추억의 맛이 그리워서

잔뜩 만들어두고 퍼먹는 게 제맛인 콘샐러드

by 담화

3월의 마지막 월요일을 맞이하여 짧은 소회 한 줄. 덥다, 더워.

아직 4월이 안 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더우면, 그럼 올여름은 또 어떻게 하지? 너무 일찍부터 걱정하는 걸까?


아무래도 올해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양의 요리를 해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한 해가 될 것만 같은데, 그럼 안 그래도 덥고 뜨거운 부엌에서 어떻게 여름을 지내야 좋을지, 벌써 그런 걸 걱정하는 건 지나친 걱정일까?


하긴 미리부터 걱정하는 건 엄마 체질도 성격도 아니긴 해. 그보다는 닥치면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되지 뭘 일찍부터 걱정해. 걱정한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쪽이잖아, 엄마는. 그렇지?


한 주 동안 해 먹었던 음식들 폴더를 펼쳐보며 무얼 가지고 이야기를 할까 잠시 고민했어.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은 모든 음식들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더라는 거였지. 웃기는 에피소드도, 웃지 못할 눈물 젖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도 있었어. 우울한 얘기를 굳이 여기서 다시 꺼내기는 좀 그렇고, 웃기는 이야기.


엄마가 스무 살 땐가… 그전 해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때는 온 동네에 KFC가 하나씩 다 있을 때였단 말이야. 그때 막 트위스터가 출시됐었어. 그게 얼마나 맛있었던지 거의 매일같이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나. 그때도 세트 메뉴가 있었는지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KFC에서 사이드 메뉴하면 엄마는 당연히 고민의 여지없이 코울슬로를 고르던 시절이었거든.

근데 같이 있던 친구가 갑자기 피식 웃으면서 아, 먹을 줄 모르네, 이러는 거야. 아니 내가 뭘 먹을 줄 모른다는 거지. 나름 미식가인데(먹을 수 있는 식재료에 한해서)! 괜한 오기가 났던 스무 살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지. 내가 뭘 모르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주 오만하게(그 이상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음) 메뉴판을 가리키면서 KFC는 콘샐러드지, 라고 말하는 거야. 먹을 줄 모른다는 말을 또 굳이 곁들여서. 사실 엄마는 그 통조림 콘옥수수 특유의 맛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

근데 뭐랄까, 그 나이는 그렇잖아. 아무튼 뭔가 지적당하면 괜한 오기가 치솟는 나이(해당 나이이신 선이 씨, 말씀 좀 부탁. 오기 나는 거 맞지?). 그래서 당장 주문을 바꿨지.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그 ‘먹을 줄 모르네’ 멘트 발설자에게 뭐! 별거 없네! 를 쏴 붙여 줄 준비를 하고 있었지.


오, 그런데 별거였어. 신기할 정도로 별거더라. 별거 안 든 거 같은데, 왜 뭔가 킥이 있는 것 같은 맛이 나지… 그렇게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조용히 퍼먹고 있었던가 봐. 친구가 한쪽 입꼬리만 끌어당기더니 이제 뭘 좀 아는 얼굴을 하네, 요딴 말을 지껄이는 거 있지(그 친구랑은 아직도 친해. 기억해? **일보 기자 이모.


아무튼 그 이후로 엄마는 제대로 변심해서 코울슬로를 버렸어. 어쩌겠어, 사랑은 변하는 건데. 입맛을 계속 붙들어둘 만한 참신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코울슬로가 잘못한 거지… 이게 아닌가… 아무튼.


그러고 뭐 여차저차해서 KFC와 더 이상 친하게 지낼 수 없게 된 지 꽤 시간이 지났단 말이야. 그렇다고 콘샐러드를 잊은 건 아니었다고. 그런데 놀라운 소식을 들었어. 콘샐러드가 단종됐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너무해. 하지만 단종 이유를 들어보니 그것도 그럴 만했다… 고 납득할 수밖에 없더라. 그럼 뭐 어쩌겠어. 셀프 조달해야지.


옥수수를 사자. 물론 이때는 통조림에 달큼한 국물이 있는 바로 그 콘옥수수를 사야 해. 채반에 받쳐서 물기를 쪽 빼준 다음에, 옥수수 양의 1/2 정도, 도각도각 썰어주고 당근도 넣어도 괜찮고 안 넣어도 괜찮지만 시각적으로는 파프리카가 선명해서 예쁘더라. 오이나 적양파도 색깔 맞추고 싶으면 넣어줘도 안 될 건 없겠지.


마요네즈는 3에서 4 스푼, 레몬즙을 1 스푼. 그리고 설탕을 1 스푼 정도 비율로 넣어주는데 여기에 소금과 후추(가능하면 백후추가 좋지만 집에 백후추 흑후추 따로 갖춰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대충 아무 후추나 넣자)로 살짝 간을 해줘야 맛있어. 중요한 거,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숙성시켜 주는 거(물론 냉장고에서) 바로 먹으면 별로 맛없어…


이게 의외로 그냥 속이 허할 때 간식처럼 퍼먹기에도 나쁘지 않거든. 샌드위치나 수프 같은 걸로 바쁘게 끼니를 때워야 할 때 사이드로 놓기에도 좋고. 아무튼 음식 하는 법은 뭐든 다 배워놓으면 쓸모가 있다니까. 근데 그건 그렇고 진짜 뭐 하기가 싫어지는 계절이 오고 있어서 그런가 역시 겁이 난다. 이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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