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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Feb 14. 2024

예술이라는 화두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최근 예술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내내 한 손에 쥐고 있게 만들었던 책이 몇 권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한 달 전쯤 읽었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다. 사실 하루하루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바쁜 현대인에게 도대체 예술이야 이렇든 저렇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예술은 남의 일이다. 예술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여유의 증거인 것만 같아서 가끔 씁쓸하다.

누군가가 예술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에게는 예술이 무엇이 되어줄까. 취미, 신념, 도구, 기타 등등등.  


이 책의 저자는 예술의 공간으로 도피했다. 그의 삶에 해일처럼 닥쳐든 슬픔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목차만 따로 떼어 읽어도 그곳에서 보낸 세월이 그에게 어떤 아포리즘적 깨달음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2장.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3장.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9장.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10장.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11장. 완벽하지도 않고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13장.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학부 수업 중 그를 가장 두근거리게 했던 미술사 수업을 통해 그는 예술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언어를 갖추고 정련하는 일이었으나 그의 형이 병으로 쓰러지고 연이어 죽음을 맞으며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인생에게 품었던 꿈을 찢어버린 불청객의 난입을 그대로 수용한다. 갈가리 찢긴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부여쥔 채 그나마 회복을 기다릴 수 있는 장소로 그가 선택한 곳은, 그가 가장 아름답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던 장소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그가 계획한 적 없으나 불행의 한가운데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상황에서 내렸던 선택 덕분에,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남았다. 이 책은, 마치 조개가 품었던 진주와 같은 우아한 광채를 머금은 문장들로 더불어 빛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문이 닫힌’ 시간의 미술관이 어떠한 모습인지, 그 뒷면에 속한 이들이 그림자가 되어 관람객들의 감상을 돕고 보조하며 때로는 그들의 모습에서 예술의 본질을 궁리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읽는다.


그의 시야에 머물렀던 수많은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간혹 나를 발견하고 친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예술 작품이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에 잠겨 들게도 한다. 무엇보다도 쓰여진 문장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것을 써 내려갔을 저자의 시간을, 돌이켜 회상했을 조금 더 앞선 시제의 시간들을 함께 추체험하는 경험은 현재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1인칭 나를 희미하게 만들고 잠시나마 나를 예술의 공간에서 원껏 헤맬 수 있다. 어떤 책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10여 년의 경비원의 생활이, 시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토록 담담하고 건조한 문장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뜻밖으로 느꼈던 것은 거장의 ‘지문’을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것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외양을 갖춘 완성품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배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들어간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는 데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75쪽


때로는 서툴고 허술한 작업들을 밟고 앞으로, 조금 더 먼 곳으로 일보진전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무언가를 읽고 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내일의 내게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런 것이 없다면, 인생은 너무도 지루하고 슬픈, 어떻게든 견뎌야만 하는 것이 될 테지.


아버지는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몇 시간이고 연주하곤 했다. 그는 피아노를 사랑했다. 한동안 자동차 범퍼에 “피아노”라고만 적힌 스티커를 붙여 놓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27쪽

전적으로 동감이다.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지속하는 것. 거기에서 눈길을 끄는 무엇인가가, 존경할 만한 그 무엇이 발생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테마의 장면을 ‘경배 adoration’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그런 순간에 생겨나는 애정 어린 숭배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참 유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말문을 잃고 말랑말랑해진다. 뒤이어 강렬하고 명백하지만 일상생활의 소란 속에서는 약하게밖에 느껴지지 않던 무엇인가가 우리의 안으로 침투한다. 경배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66쪽

그것이 무엇이든 생이 다할 때까지 마음에 보듬어 안고 갈 수 있는 문장이 있는 삶은 꽤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내 경우에 그것은 ‘경이’가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본 뒤에 그렇게 결론 내렸다.


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고난으로부터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겠지만 그 시도만큼은 심금을 울린다. 엄청난 압박의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렇듯 웅장한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 -126쪽

패배할 것을 알아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또 쓰러지되 또 일어서는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어떤 것일지를 고민한다. 시지프스적 자질은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302쪽

종종, 타인이 창조한 아름다움은 그가 들인 노력에서 어떤 숭고함을 느낀 자들이 보다 쉽게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324쪽)는 저자의 말을 빌어, 이 책 또한 한 편의 예술임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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