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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Feb 28. 2024

삶을 끌어나가는 열정

위니프리드 홀트비, 불쌍한 캐럴라인

세상은 늙은 여자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는 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이 늙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캐럴라인 | 저자 Holtby, Winifred | 출판 휴머니스트 | 발매 2023.07.17.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에게 온갖 종류의 감정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지. 한두 종류의 주류 감정에 지배되는 인물은 꽤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속 시끄러워지는 인물을 만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왜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살 수밖에 없는 저런 행동을 하는지, 별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게 확실한 일을 대단한 일이라 굳게 믿으며 쓸데없는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짓을 왜 애써 계속하는지.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나갈 생활력조차 없으면서,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별 대단치도 않은’ 일을 하는데 왜 모든 자원을 다 쏟아붓는지,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열성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주인공, 노년의 문화사업가(...라고 합시다) 캐럴라인 덴턴스미스의 행적을 보다 보면 속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독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에 따라 캐럴라인에 대한 평가는 몹시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엄청나게 계획적이고 꼼꼼한(것 같긴 한데) 일면이 있는데, 그 열정의 방향이 사뭇 엉뚱한 곳에 향해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오점이랄까, 심각한 비극이랄까.      


그런데 말입니다(진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을 이 시점에서 한 번 해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회의주의자라는 게 없지는 않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우며 자신이 바로 정의의 실천자라 생각하고, 자신의 믿음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조금의 회의도 없이. 이것이 평범한 보통 사람의 유형이 아닐까. 그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캐럴라인은 분명히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기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함께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그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모습을 책장 건너의 이곳에서 보는 독자의 마음은 일말의 애잔함, 안타까움, 속상함. 때때로 치미는 짜증과 경멸감의 축을 바쁘게 오간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는 타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서사 문학인 까닭에 플롯만 추려 파악한 것으로 한 권의 책을, 혹은 영화를 다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지 않을까.     

“고모한테는 골칫거리가 되는 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일흔 넘은 여자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겠어요? 혼자 하숙집에 사는데 집세는 밀리고, 우리가 준 헌 옷을 입고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들을 하겠다고 종종거리며 다니고, 아무도 실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저녁밥으로 마가린 바른 빵을 먹는 인생에요. 그 끔찍한 방을 보니 좀 딱하기도 했어요. 불가능한 계획으로 빽빽한 서류들이 잔뜩 있는 방.” -15쪽     


이 대사가, ‘우리 고모는 구제 불능의 관종이었어’로 요약되지 않기를 바란다.      


“친척들이 너한테 그만 발버둥 치고 망한 여자들이 사는 클럽에서 노령연금을 받아 살라고 말한 적이 있어? 성공을 빼고 아무것도 안 남은,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은 적 있니? 네가 너의 특권을 모두 다 벗어던진다고 해도, 엘리너, 넌 우리 세대의 헐벗음, 외로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심지어 특권이 없다고 해도 너는 젊고 건강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고 사람들이 계속 너를 도울 거란 보장이 있지. 하지만 나 같은 여자들은, 우리는 맨땅에서, 정말이지 무에서 시작했어. 너는 평생 보호받으며 살잖아. 너는 네 세대가 가진 특권을 내려놓을 수 없지. 그런 네가 내 앞에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라’고 말하고 있어!” -111쪽     


자녀 세대에겐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이다. 코너에 몰린 사람은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자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무엇이 이 인물을 이토록 절박하게 외치게 만들었을까.     


회의록의 형식적인 문장이 캐럴라인을 안심시켰다. 미사에서 사용하는 친숙한 단어들이 그랬듯이. 그 단어들에는 소중한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든든하게 남은 것이 있었다. 익숙하고 관례적인 사업 절차 덕에 이즌바움의 배신이 그리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잠 못 드는 밤과 낮에 이 단정한 문장들로 나는 무엇을 했던가? 자신의 패배를 뜻하는 건조한 기록을 낭독하고 있자니 이사들이 사라진 것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해졌다. -303쪽      
인생은 너무 짧은데 무엇이 옳은지는 너무 불확실했다. 인간은 어차피 멸망의 그림자를 지고 살고 있는데 모험 한번 못 해볼 이유가 있을까? -381쪽     


일흔에 무엇을 하고 있었으면 하는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전히 정의라 믿고 있을지. 지금 사랑이 무엇이라 믿고 있는 것을 그때도 역시 변함없이 믿고 있을지,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지금 내가 물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들보다,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는 마음의 집이 그 나이에 도착한 순간에 여전히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을지가 가장 걱정되고, 그때 가서 보니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혹여 절망스러워하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런 것이 가끔 두렵다. 그리고 가장 되고 싶지 않은 노인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그런 두려움과 희망을 안은 채로 책장을 덮었다.


최초작성_202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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