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클럽에 붙여
가장 멀-리 가고 싶을 때 눈을 감습니다.
어떤 날은 5년 전, 그해의 마지막 달에 홀로 독일의 낯선 도시를 유럽 특유의 전구색 불빛을 배경 삼아 오래오래 걷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새벽빛을 받으며 지방으로, 또 지방으로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서 차를 몰고 강의를 하던 시절로 가 보기도 합니다. 때론 까만 밤 달빛 아래 해운대구에서 가장 높은 장산을 오르던 22살의 나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된 것 같아 실제 있었던 일인지 꿈을 꾼 건지 모를 때도 있어요.
저는 주로 집 안에 있지요. 나의 주된 업무는 집안일이니까요. 집에서 가장 넓은 거실, 창가에 서서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지점을 응시하다 이윽고 눈을 감게 됩니다. 마침내 2022년 10월 늦가을, 월요일 밤 10시로 넘어갑니다. 부엌 4인용 식탁에 파자마 차림으로 앉아 스탠드 불빛을 켜고 그날의 책과 함께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요. 늘 설레던 순간입니다. 왜 설레었을까요?
비슷한 삶을 살고 있던 엄마 혹은 여성들이 모여 은근하게 음밀하게 절실하게 힘겹게, 겨울이었지만 땀 냄새 풍겨가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조차 몸과 마음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었거든요.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 우리가 진심으로 갈망하던 소통. 그 과정이 어쩌면 내 자신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신호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향클럽’. ‘나의 취향’을 위시하여 모든 이야기를 웃고 울고 노여워하며, 아기는 곧 깰 텐데 혹은 내일이 새벽 출근임에도 밤새 시간을 보냈던 어쩌면 이상한 사람들의 클럽. 모두 씩씩하게 슬프게 잘 지내셨는지 그날처럼 안부를 묻고 싶은 오늘입니다. 모니터를 더 가까이 쳐다보면 참여한 분들의 표정을 좀 더 살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얼굴을 들이밀어 보기도 했지요. 저의 안부를 물어봐 주신다면 저는 잘 지냅니다. 검푸르고 드넓은 바다에 닻 없는 배처럼 꽤 오래 떠돌던 때가 있었어요. 북클럽은 저의 훌륭한 닻입니다. 여전히 튼튼하게 잘 달려있어요. 드넓은 바다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지속될 터이지만 잠깐 안도하고 잠깐 평화롭고 잠깐 행복합니다. 그렇게 행복이 다녀간 그 자리를 떠올리며 또 잠깐 행복해합니다. 그것으로 모자람 없이 넉넉해하며 아주 큰 호흡을 하며 지냅니다. 진심으로, 실로 진심으로 북클럽 덕분입니다. 늘 큰 선물을 받았다 여깁니다.
우리가- 우리가 그렇게 찍은 별들은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다행히 머물러 있습니다. 무심코 어디론가 떠밀려 흘러가 버리지 않고 단단히 봉인되어 있다고 믿어요. 봉인해 둔 그 이야기가 클럽장 최예지 작가님, 임민희 님의 노고로 책으로 만들어집니다. 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제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어쩜, 읽을 수 있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