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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활 단상

채움보다 비움에서 배운 것들

이제는 소비에도 치열한 고민을

by Bridge K

두어 달 전, 가족들과 한 쇼핑센터에 있는 식당으로 외식을 하러 갔을 때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이미 차가 많아 주차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겨우 눈에 띄는 빈자리를 발견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뒤에 따라오는 차는 없었지만, 그 자리를 빨리 차지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조급함이 몰려왔다.

빈자리를 두고 사선으로 차를 빼낸 후 후진으로 들어가는, 아주 단순하고 몸에 익은 동작이었다. 그런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어어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오른쪽 뒷바퀴 윗 펜더가 건물 기둥에 완전히 눌리며 긁히고 만 것이다. 오랜 운전 경력 동안 이런 어이없는 사고는 처음이었다. 자존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흠집 난 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 차도 아닌데 괜스레 속상해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졌다. 자주 세차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평소 자주 타는 차도 아닌데, 왜 그리 마음이 쓰였을까. 다행히 컴파운드로 슥슥 닦고 나니 흉터가 조금 남았지만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아마도 그 다음날부터는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최근 이사한 집은 이전보다 오래되어 낡고 좁다. 약 10여 평이 줄어들다 보니 일부 큰 짐은 미리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소파, 냉장고 한 대, 빽빽이 꽂혀 있던 책들까지, 공간의 한계가 뻔했기에 일종의 ‘물건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처분한 물건 중 상당수는 아내가 중고장터에서 팔아 쏠쏠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중에는 애착 가는 물건도 있었지만, 이사할 때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도 많았다. 사실상 그동안 전혀 찾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헤드폰, 빔프로젝터, 두꺼운 동창회 명부 따위.
“이건 이제 버리자.”
“그렇게 아끼더니 이젠 버려도 돼?”
“엉, 그러게. 사실 집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잖아, 하하.”
아내에게 농담을 건네며, 그토록 붙잡고만 있었던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추억은 굳이 물건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손에 잡히는 ‘증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내 인생의 한 시절을 존재하게 했던 흔적들 말이다.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흔적들이다. 첫 직장의 기억이 깃든 물건들이나,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의 기록들. 프로젝트를 완수한 뒤 선주에게 받았던 단체 티셔츠, 혼자만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던 감사패, 지금 다시는 받기 어려울 성적표 같은 것들이다. 영광의 순간은 말로만 채워지지 않기에, 간직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어릴 적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집도 궁궐이고, 선 없이 연결되는 블루투스 이어폰은 상상조차 못한 물건이다. 조금 만 걸어도 되는 거리에도 차키를 먼저 찾고 더위를 피해 에어컨 찾는 삶은 일상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경제적 독립과 성취를 발판 삼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성장 덕으로, 자연스레 더 넓은 집과 갖고 싶던 물건들에 대한 소유욕을 채워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막상 내 것이 되고 나면 조금씩 망각되곤 했다. 소중함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돈으로 행복을 산 것일까, 아니면 결핍을 메운 것일까. 갈망과 소유욕은 사라지지 않고 대상을 옮겨갈 뿐이었다. 집도 차도 갖게 된 요즘은 땅에 눈길이 간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일시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소유해 보니 별것 아니라는 경험이 쌓이며, 예전 같은 갈망은 확연히 옅어졌다. 물론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만 해도 충분히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내가 가진 재화를 토대로 최선의 소비를 하는 것이 삶의 교훈이 되었다. 한 번 살 때 자주 쓰게 될 물건인지, 단순히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힌 선택은 아닌지, 때로는 아내와 의논하고 시간을 두고 고민하기도 한다. 이 물건이 우리 집, 나의 공간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감정이입을 해 보는 것이다. 아직 설익고 욕망이 앞서지만 분명히 필요한 과정이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에 대한 소유 감정이 올라왔는 데 잘 극복하고 있다. 이미 내 손목에 스마트 워치가 있는데도 새로운 워치의 특별한 기능이 그 시계에만 있어서 였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시계 업체 마케팅 담당자의 술수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틈만나면 시계 회사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기능을 훑어본다던지,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선전 문구를 떠올리며 나의 고민과 행동에 합리화를 주기도 했다. 그래도 잘 극복했다. 어느정도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은 더 강력한 마케팅이 다가와도 넘어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그렇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에게 외치고 싶다.

“벌 때 그렇게 고생했으면, 쓸 때도 고민 좀 하고 쓰자. 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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