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그리고 거울을 보는 마음으로

새해의 첫 일기

by 브리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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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내 어린시절 그림일기가 집에 남아 있더라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굵은 실끈으로 묶은 그림일기장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1993년 여름의 나는 오래 전 다른 은하에 두고 온 친구 같다. 한때 그 아이가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나와 포개지듯이 살아서 크레파스를 쥐고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이 눈에는 꽃들이 일어나 힘차게 노래하고, 주변은 노랗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

일기 속의 나는 미끄럼틀을 타려고 줄을 서 있다가 "기다리면 언제나 즐거운 일이 있겠지"라고 기대하고,

내 수준보다 어려운 피아노 악보를 사고선 "많이 연습해서 내가 동생을 가르쳐 줘야지"라고 다짐한다.

미술학원에 갔던 날은 동생이랑 같이 가서 "참 기뻤다".

이삿짐도 싸고 엄마 청소도 돕고 잠수함도 타고 있었다(엄마가 어른이 되면 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우리 선생님은 예쁘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춰서 2학년 때도 담임이 되면 좋겠다고 해놓고선, 곧 전학 갈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겠다고 말하는 엉뚱한 아이였다.


내가 기억하고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말이 없고 수줍은 아이였는데.

방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이불 속에서 울었던 기억이 많아서 타고나기를 예민하고 우울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림일기를 보니 나는 착하고 명랑한 어린이였고 행복한 유년을 보낸 것 같다.

여덟 살의 내가 나한테 말한다.

기다리면 언제나 즐거운 일이 온다고.

어려운 것은 언제나 연습을 많이 하면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올해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