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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연 the dawn Jun 19. 2020

할머니의 고등어석쇠구이

할머니와의 추억

환갑잔치가 끝나고 다음해쯤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릴때면 유난히 '고등어'와 관련된 추억이 많다.

어느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던 날, 어머니는 재래식부엌에서 손두부를 만드셨고, 이내 나를 부르셨다.

"할머니댁에 가져다드리고 오렴."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외투를 입고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길을 걸어 할머니댁으로 갔다. 옷을 든든히 입었었는지 하나도 춥지 않았던 기억이다.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살고계셨다. 우리집 부엌보다 더 큰, 부뚜막에 큰 솥이 두개씩 걸리곤 했던 재래식부엌안에서 할머니께서 따뜻히 맞아주셨다.

"할머니, 두부 가져왔어요."

"밥먹고 가거라."

동그랗고 까만 화로에 할머니는 석쇠를 올리시고 고등어를 뒤집어가며 금새 구워내셨다. 하얗고 까맣고 등푸른 고등어는 항상 두툼하고 싱싱해보였다. 양은상을 그 옆에 차리고, 바삭바삭 갈색빛이 살짝 돌 정도로 노릇노릇 잘익은 고등어구이를 석쇠위에서 그대로 발라 밥위에 올려먹었다. 살짝 짭짤하고 담백하고 촉촉한 고등어는 지금도 그 맛이 그대로 생각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두툼한 살점들을 할머니와 오순도순 나눠먹다보면 밥한공기는 금새 뚝딱이었다.


그 후로 몇달이 지나 할머니댁에서 좀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동네슈퍼를 하게 된 것이었다. 야채나 생선 등도 함께 파는 슈퍼 정도의 규모였다. 그리고 어느날 슈퍼에 생선 몇상자가 들어왔다. 그중 유난히 크던 등푸른 생선을 어머니께서 아주 큰 냉장고에 넣으셨고, 실한 고등어 몇마리를 검은 봉지에 담아주셨다.

"할머니께 가져다드리고 와. 고등어가 싱싱한게 들어왔네."

할머니댁은 이제 우리집에서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늘 그렇듯이 재래식부엌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 고등어 가져왔어요. 고등어가 싱싱하대요."

"고등어 먹고 가거라."

할머니는 또 화로 위 석쇠에 고등어 한마리를 올리시곤 바삭하게 구워내셨다. 집에서 후라이팬에 구운 고등어는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화로에서 나는 숯의 향이 고소한 맛을 더했다. 시골밥상의 반찬은 콩나물, 김치, 그리고 몇가지의 나물이 다였지만 숟가락 위에 까맣고 하얀 고등어만 한점 올리면 밥맛이 절로 났다.


할머니와 또 양은밥상에 마주앉아 고등어를 먹던 그날은 30년이 더 지났다. 그 은근한 숯불향, 할머니의 따뜻한 눈빛, 마주앉아 밥을 먹던 재래식부엌의 온기가 고등어의 맛보다 더 그립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할머니께서 고등어구이를 즐겨드셨나보다." 라고 남편에게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내 눈시울엔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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