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다. 중계를 안 해줘서 모를 뿐이지...
TV를 보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6번 7번 9번 11번. 하루 종일 목소리만 다르고 똑같은 화면이 계속되는 시기. 바야흐로 올림픽 시즌이다. 이번 올림픽은 지난 올림픽들과는 달리 언론들이 강조하는 기사가 있다.
올림픽 역대 최다 콘돔 배포
리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번 올림픽 선수단에게 45만 개 이상의 콘돔을 지급한다. 선수 한 명당 42개 꼴, 올림픽 기간 모든 선수가 하루에 2개씩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저 많은 콘돔을 누가, 언제 다 쓴다는 거지?
선수들은 출전 종목 훈련하느라 바쁠 텐데...
나도 예전엔 이런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대회 선수촌 생활을 겪고 나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2003년 8월, 대구에서는 대학생들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3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다.
군 복무 중이던 대변인은 이 대회 기간 동안 선수촌에서 생활을 했다. 선수들이 머무는 선수촌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선수들의 편의를 돕는 인력으로 파견되었다. 대변인을 포함 전 군에서 약 700명이 어학 시험과 인터뷰를 거쳐 선발돼 온 걸로 기억한다.
그때도 선수촌 입구엔 선수들이 무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콘돔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대회를 기억하는 기념품인가?
순진했던 대변인은 그때만 해도 선수촌의 콘돔 박스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으나 대회가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선수촌 콘돔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회 폐막을 약 일주일 앞둔 지금의 올림픽처럼 처음엔 조용하던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은 대회가 중반이 이르자 거대한 클럽으로 변했다. 선수촌 아파트 베란다에서, 선수들의 방에서, 그리고 선수촌 한 곳에 위치한 (술을 팔지 않는) 선수촌 클럽에서 요란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선수촌 곳곳에서 삘(?) 받은 선수들은 마치 대학교 수업이 끝나고 다음 강의실을 찾아 이동하는 학생들처럼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녔다.
대변인이 관리하던 선수촌 아파트는 터키, 루마니아 선수들이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나라 선수들만 드나들었으나 나중에는 터키 남자 선수 농구 선수와 러시아 여자 배구 선수가, 루마니아 선수와 다른 나라 선수가 함께 방으로 올라가곤 했다. 1층에서 책상에 앉아 숙박업소 프런트처럼 방 열쇠를 나눠주던 대변인과 다른 군인 요원(?)들은 위아더월드를 몸소 실천하며 세계 화합에 기여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속으로 외쳤다.
부럽다
정말로 부러웠다. 운동을 잘 해야 되는 이유,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기초 외국어를 익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현지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은 리우에서는 아마도 선수들이 더더욱 선수촌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위아더월드를 외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부럽다
유부남인 내가 왜 부러워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부럽다.
대변인은 대회 기간 동안 '대회 지원 요원'으로 임무'만'수행고 선수들과 몇 장의 기념사진을 남겼을 뿐인데...
이런 사진이 뭐 중요하다고...
세계인의 화합에 기여도 못했으면서...
오늘의 결론: 운동을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