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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변인 Sep 05. 2016

대한민국 커피의 미래에 대한 몽상

콜드 브루 이후 한국 커피 트렌드에 대한 제언

지금으로부터 거진 10년 전인 2008년 8월, 혼자서 약 한 달간 스페인을 여행했다. 마드리드부터 시작해 발렌시아, 말라가, 그라나다 등을 거쳐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8월의 스페인은 예상보다 훨씬 더웠다. 스페인 친구들 말로는 북부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스페인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폭염 속에 여행을 하면서 대낮에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가 왜 생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에 여행을 하다 보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페인 로컬 카페에서 그런 메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커피는 방금 내린 뜨거운 샷 그 자체, 또는 약간의 우유를 추가한 정도가 커피의 범주였다. 얼음과 차가운 물을 넣어 달라고 하자 주인은 손을 뻗어 맞은편에 있는 스타벅스를 가라고 했다. 그들에겐 커피에 물을 한 바가지 쏟아붓고 거기에 얼음까지 띄워 마시는 음료는 그냥 '미국 애들이나 마시는 음료'였다. 이름도 아메리카노(Americano) 아니던가? 우리로 치면 비빔밥 집에서 외국인이 '밥에 우유 좀 잔뜩 넣어주시고요 고추장 빼고 시리얼 올리고 휘핑크림 하고 메이플 시럽 좀 뿌려주세요' 해서 만들어진 먹거리 비슷한 느낌일지 모른다.

2008년 스페인 한 카페에서...


스타벅스가 이대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한 이후 한국의 커피 문화는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가 어느새 커피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응용한 다양한 분파가 커피 업태의 유행을 좌우했다. 카페 라떼의 우유 거품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던 회화 커피, 수많은 베리에이션의 다세포 분열 커피, 손으로 내리는 수작 커피, 크기와 양으로 승부하는 물량 커피, 가격으로 승부하는 땡전 커피 등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양새다.


최근의 커피 업태를 주도하는 이는 콜드 브루(Cold Brew) 커피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유학하고 온 더치커피라는 친구가 한국에서 설자리를 잃자 미국 가서 현지 인맥 좀 쌓고 이름도 미국식으로 바꿔서 귀국한 느낌이긴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학 PD의 대표작 '여명의 눈동자'에서 조선계 악질 고등계 형사 스즈끼가 해방 후 여전히 경찰서에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던 하림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스즈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이처럼 거대 자본과 세계적 프랜차이즈가 유행을 주도하는 지금의 한국 커피 업태에 소규모 소자본 카페는 어떻게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까? 마침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했던 카페 사장님이 기존의 매장을 정리하고 숙명여대 후문 쪽에 매장을 계약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가는 길에 머리를 굴리다 혁신적인 카페 아이템이 생각났다.


그래! 이제는 머슬(Muscle) 커피다!


예전부터 몸짱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최근엔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활성화되면서 몸짱 비즈니스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이때, 카페에서도 그들의 건강함을 커피에 접목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몸스타그램 (출처: Instagram)


매장 주요 콘셉트

몸짱 남녀 바리스타가 피트니스, 바디빌딩 대회에서 입을법한, 또는 근육의 움직임을 최대한 잘 관찰할 수 있는 옷을 입고 만들어 준다. 옷의 크기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그래야 근육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으니까...)

커피 제조는 일반적인 카페에서 사용하는 반자동 머신이 아닌 팔 근육, 가슴 근육을 사용해서 제조하는 R.O.K Presso(이하 프레쏘)라는 수동 기구를 사용해 주문받은 손님의 테이블 위에서 직접 만들어 준다.

프레쏘의 추출 방법: 대흉근과 이두 삼두, 전완근에 힘이 들어간다


이 프레쏘라는 기구는 분쇄된 커피 가루를 포터 필터에 담아 본체에 장착한 후 사진의 양 날개를 위로 들었다 아래로 내리는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높은 압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양팔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흡사 완력기로 운동을 하는 느낌과 자극이 온다.

이걸 하는 느낌


※R.O.K Presso 커피 머신은 뜨거운 물의 압력을 이용해서 커피를 추출하는 수동 커피 기구로 갈아진 커피와 뜨거운 물만 있으면 집에서도 카페에서 마시는 고급 반자동 머신 수준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며 가격 또한 매장에서 쓰는 커피 머신의 1/30 정도 가격밖에 안돼기  때문에 비용적인 부담도 없다.(매장의 다수의 몸짱 바리스타에게 개인 지급 가능)

※커피에 관심이 많은 필자도 어떻게 하면 집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서 마실까 알아보다 8~9년 전 처음 나온 이 기구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두대째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영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 기구를 발 빠르게 수입해 팔던 한국의 작은 수입사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 이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커피 머신, 재료 판매상이 되었다. (부럽다...)


매장의 각 테이블 위에서 커피를 만들기 때문에 손님들은 몸짱 남/녀 바리스타의 근선명도와 매스를 바라보며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부위별 운동법에 대해서 바리스타들과 개별 상담 및 PT예약도 가능한 일거다득 시스템이다. 매장 한편엔 공간을 조금 할애해서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에게 바리스타들이 직접 스쿼트, 플랭크 등의 맨몸 운동을 지도해 주기도 하는 거다. 운동을 등록하러 헬스장에 오면 커피를 주는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니 운동도 알려주는 발상의 전환이랄까?


허니버터칩을 사면 중고차를 준다는 발상과 같은 맥락 (사진 출처: SK엔카)


이쯤에서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아이템은 근육질 남성들이 음식 서빙을 하는 일본의 '마초 카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일본에서 성업중인 마초카페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마초 카페는 고객을 주로 여성 고객으로 한정한 반면 필자의 머슬 카페는 남녀 구분 없이 좋은 몸을 동경하고 건강해지길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몸짱 마켓은 몇몇 유명 몸짱이 TV, 잡지, 매체에서 활약하던 '스타 몸짱'의 시대를 지나 최근엔 각종 대회와 인스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십인십색의 매력을 뽐내는 이른바 '대몸짱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몸스타그램 만 쳐봐도 각박한 헬조선에 아직 한줄기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몸짱시대의 개막을 천명한 KBS출발 드림팀 머슬퀸 특집


집에 들어가는 길에 이 아이템을 상상하며 스스로 나의 천재성과 아이템이 주는 희망찬 기운에 입가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왠지 그럴듯하지 않은가? 매장을 전부 통유리로 꾸미고 1층에다 만들어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이고 인테리어나 집기 비용도 크지 않아 보인다.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의 2층, 3층 심지어 지하에 만들어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될 것 같다. 규모에 여유가 있다면 한쪽에 몸짱 바리스타들의 대회 준비를 위한 포징 연습 공간을 만들거나 GX공간을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 필자의 아름다운 몽상을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으며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는 독자라면 슬슬 '이 아이템은 몸짱 남/녀 바리스타의 채용과 그들의 인건비가 최대 관건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인스타그램 #몸스타그램 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럼 네가 직접 해보지 그래?



라고 묻는 분이 계신다면 필자는 현재 작은 피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게도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고 앞으로 사업보다는 이렇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똥글로 풀어내는 글쟁이로 먹고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매장을 부동산과 카페 등에 내놨는데 연락이 많지 않다. 금액도 크지 않은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장사를 할 작정이라면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개하지 않고 혼자 머릿속에서 구체화했겠지만 미천한 본인보다는 어딘가에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변화를 꿈꾸고 있을 프런티어에게 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사업을 현실화시켜 큰 성공을 이루거든 본인에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만 대접해 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디테일한 조언을 듣겠다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이 글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쓸데없는 몽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30년 전 이태리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돌아온 하워드 슐츠는 시애틀에 스타벅스라는 카페를 차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커피 같지도 않은 커피를 파는 이 카페가 내년 초 밀라노에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혹시 알겠는가? 머슬 커피도 미래 커피의 대세가 될지...  


※이 글은 개인적인 몽상을 바탕으로 서술되었습니다. 특정 제품과 인물에 대한 묘사는 홍보나 비하 목적이 아닌 글의 구체화를 위해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추후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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