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함께 아버지를 갉아먹던 독한 항암제에도 끝내 내성이 왔다. 치료를 시작한 지 15주 만의 일이었다. 3주 간격으로 다섯 차례 치료를 받았으나 아버지 몸 곳곳에 퍼져있는 암세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뿌리내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제주도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위드 코로나로 다시금 관광시장에 활기가 도는 시기였다. 항암이 중단되며 부작용으로 고통받던 아버지의 컨디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당장 계획을 세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허락되는 시기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제주도 이야기를 꺼냈으나 아버지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는 마뜩하지 못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 좀 제발 그만 괴롭혀’라고 말하며 대화를 거부하였다. 선선히 아버지의 투정을 달래줄 법도 하건만 내게 그럴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 계획은 무산되었고 다시금 창궐한 바이러스로 여행의 단꿈은 새하얀 포말이 되어 부서졌다.
아버지는 표표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남은 시간을 살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 아버지가 여행 가자는 말에 왜 역정을 내었는지 당시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달포 가량 지났을 때, 문득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아버지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아버지를 옥죄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건넨 셀 수 없는 안부 인사와 매일 같이 아버지의 집으로 발걸음 했던 날들. 그것은 정녕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나 아버지 없는 시간을 살아갈 나를 위한 것이었나. 나 역시 내게 다가오는 타인이 가족일지라도 지나치게 다가오면 외면하며 거리 두기를 원치 않았던가. 내가 그저 투정으로 치부했던 그의 날 선 말이 나의 진심을 외면하고 싶었던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그를 존중하지 않았던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은 사실 모두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자식 도리를 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외롭게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손자를 보여주는 의무를 다했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그녀는 이야기한다. 24시간 가족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떠나 적당한 무관심의 상태에 놓였을 때야 비로소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나를 괴롭히지 말라던 아버지의 외침 역시 적당한 무관심을 갈구하는 목소리였다. 어리석은 나는 아버지의 역정으로 내가 받은 상처에만 몰두하여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항암 부작용으로 식이장애를 겪는 그에게 보신탕을 사다 주며 먹어야 산다는 말을 건네는 대신 힘없이 떨리는 그의 손에 온기를 나누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를 위한 행동이 사실은 모두 나를 향한 행동이었음을 나는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