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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빛 Oct 27. 2021

2. 이레사와 타그리소 그리고 내성

나를 지켜주던 것들과의 작별

 아버지는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뒤 조직검사를 받았다. 간단한 조직검사라고 하면서도 의료진은 보호자인 어머니에게 각종 부작용이 적힌 안내문을 건네었다. 기흉, 출혈, 사망…. 사망이라는 단어는 다른 부작용 안내와 달리 크고 굵게 적혀있었다. 물론 사망이 드물게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보호자 동의서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서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 씁쓸했다.  “동의하시면 정자로 이름 써주세요”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태블릿 PC의 서명란에 어머니는 이름 정자를 꾹꾹 눌러 적으셨다. 아버지는 조직검사를 위해 검사실로 들어가고 어머니와 나는 복도에서 두 손을 맞잡은 채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암세포에서 EGFR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 경우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데 표적항암제는 약학 사전에 의하면 ‘정상세포와 차이가 나는 암세포의 특정 부분을 표적으로 하여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약물’이다. 우리가 흔히 암환자 하면 떠올리는 탈모나 구토, 구역과 같은 심한 부작용 없이 치료를 할 수 있는 약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표적항암제 중 ‘이레사’를 처방받았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레사는 정말 고마운 약이었다. 이레사의 대표 부작용인 피부발진과 손발톱 주위염으로 아버지도 꽤 고생을 하였는데 그래도 장점이 훨씬 많은 약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물과 함께 복용을 하면 되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효과가 꽤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받았던 외래진료를 두 달에 한 번 받기도 했다. 


 이레사로 인해 우리 가족은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다 함께 거제도에 놀러 가 파도가 몽돌에 부서지는 청아한 소리를 듣고 나의 아이와 아버지는 바다를 향해 몽돌을 던지며 물수제비를 뜨기도 했다. 날씨는 온화하고 햇살과 바다가 만들어낸 윤슬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평온한 풍경 속에서 아이와 함께 물수제비를 뜨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내 눈앞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왜 이리 내 마음을 시큰거리게 하는지 암이 곧 죽음 자체가 아님을 알면서도 내 마음은 현재가 아닌 불안한 미래에 닿아있었다. 그날 바다의 물결은 고요하고 잔잔했는데 내 마음엔 큰 파도가 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제주도에 내려가 생활을 하고 있던 친한 친구로부터 결혼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의 결혼식 참석 후 여행할 참으로 회사에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식 참석으로 제주도에 갈 일이 생겼는데 혹시 같이 가실 수 있냐고 여쭙자 아버지는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제주도로 떠났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은 일정을 함께할 수 없기에 그 시간 동안 부모님을 오설록 티 뮤지엄에 모셔드렸다. 오설록에 다도(茶道)를 배울 수 있는 티 클래스가 있어 사전 예약을 하고 오설록을 방문했다. 그날은 제주의 날씨에 걸맞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통유리를 통해 바깥에 내리는 비를 보며 차를 즐기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 물안개와 녹차밭의 녹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매혹적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부모님을 다시 만나 다도 체험에 대해 여쭤보았다.     


 “정말 좋았어. 푸르른 나무도 좋고 비 내리는 풍경도 좋고. 그런데 아빠 때문에 울뻔했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문에 울뻔했다니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울 뻔하셨다고요? 왜요?”

 “차수(茶壽)에 대해서 배웠어. 한자 차(茶)를 하나하나 떼어보면 열 십(十), 여덟 팔(八)로 이루어져 있대. 그래서 차수는 108세를 의미한다며 다도 선생님께서 ‘차수(茶壽) 하세요’라는 인사를 알려주셨어. 다 같이 웃으며 ‘차수(茶壽) 하세요’ 하며 다도를 마쳤는데 옆에서 아빠가 그러시더라.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      


 차 안에는 의도치 않은 적막이 맴돌았다. 차창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피아노 소리가 적막을 깨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빗물은 점점 굵어져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앞유리창 시야를 가렸고 와이퍼는 초 단위로 벅벅 소리를 내며 빗물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아버지 마음에 자리 잡은 저 슬픔도 문질러 닦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워질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하게 된 현실을 이제는 인정하라는 듯 큰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레사를 복용 중이었고 이레사의 효과가 좋아 가족들은 잠시 아버지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제주가 주는 안온한 기운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처연하게 아려왔다. 


 아버지의 불안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얼마 뒤 방문한 외래진료에서 아버지는 이레사 내성 판정을 받았다. 폐암 환우 카페에서 이레사만 7년째 복용 중이라는 희망적인 글도 보았고 평균 내성 기간이 12개월이라고 안내받은 터라 갑작스럽게 찾아온 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평균은 말 그대로 평균일 뿐이었다. 평균을 벗어나 평균 기간 이상으로 이레사를 처방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반대로 평균 기간 이하로 약을 처방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최댓값에 수렴하길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균 이하의 값에 멈춰 서게 된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진료실을 빠져나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병원 로비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묵연함을 유지한 채 희미하게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소중한 이레사를 보내고 또다시 조직검사를 했다. 폐암 환자들에게는 꿈과 같은 약이 있는데 그는 바로 ‘타그리소’였다. 이를 처방받기 위해서는 ‘t790M’ 변이 양성 판정을 받아야 했고 기대와 걱정을 함께 끌어안은 채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감사하게도 아버지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 또다시 새로운 표적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게 되었다. 타그리소의 경우 처방을 받고 싶어도 처방이 쉽게 되지 않으며 비급여로 처방받을 경우 한 달 약값이 7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약이었다. 그런 약을 처방받고 급여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이레사에 일찍 찾아온 내성으로 낙심하고 있던 아버지는 타그리소 처방으로 다시금 안정을 되찾으셨다. 표적치료제를 복용하는 동안 아버지는 암환자 같지 않았다. 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번 하시던 새치염색을 하지 않으셔서 흰머리가 늘어났을 뿐 암 진단 이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평온한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는 줄타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타그리소 처방을 받고 일상을 보낸 지 5개월쯤 지났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왼쪽 시야에 이상을 호소하셨다. 이물감이 느껴지고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 든다고 하셨다. 혈액종양내과에서 안과 진료를 연계해 주었고 안과에서 신경외과로 아버지의 진료가 연계되었다. 검사 결과는 처참했다. 타그리소에 내성이 왔고, 뇌하수체와 뇌에서 시신경이 지나가는 근처로 종양이 전이되어 있었다. 뇌에 전이된 종양 치료를 위해 감마나이프 시술과 방사선 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는데 감마나이프 시술의 경우 시신경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실명 위험이 높아 불가하며 이에 뇌 전이 종양은 전뇌 방사선 치료로 방향을 잡았다. 뇌하수체에 전이된 종양의 경우 조직검사 확인 결과 악성으로 확인될 경우 뇌하수체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추운 겨울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이레사와 7개월, 타그리소와 5개월. 정확히 12개월을 표적치료제와 보내고 다시금 찾아온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의연함을 잃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버지는 ‘고맙다’고 했다. “이레사나 타그리소는 처방받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잖아. 나는 운 좋게 두 가지를 모두 처방받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내성에 치료 기간이 짧았음에도 기회가 있었으니 감사했다는 말은 내게 구슬프게 들렸다. 아버지의 말에는 진솔함이 담겨있었으나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고 아버지는 애써 덤덤한 태도를 유지했으나 두려워 보였다. 타그리소를 복용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찾고 그 결과에 기뻐하며 이제 막 일상으로 돌아오려던 찰나 다시 내려진 내성 선고는 가혹했다. 




 새드엔딩은 때로 해피엔딩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아버지와 공유하고 있는 내 인생의 한 권을 새드엔딩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병으로 아버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던 일이기에 더욱 막막했다. 사위가 거울로 이루어진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위를 올려다보아도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연속되는 거울 속 피조물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미아를 가엾이 여겨달라며 무신론자인 나는 신에게 빌었다. 내 여명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내 아비에게 내 여명의 일부를 나누어 주라고 어린 생명을 어미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있는 나는 무책임한 기도를 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자 주인공처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금연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폐암에 걸렸다. 암의 원인이 흡연만은 아니겠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아버지의 몸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되었으니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버지의 흡연을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때로 시간을 돌려 잠시라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아버지의 병을 막을 수 있을까.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딱지 맨이 아버지를 살려줄 테니 자신과 딱지를 치겠냐고 하면 나는 기꺼이 딱지를 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의 여주인공처럼 아버지를 위해 나는 무엇이든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까. 간절히도 아버지의 건강을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왜 이토록 겁이 날까. 


 아버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날것 그대로의 내 감정은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다. 나의 모순은 나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어느 쪽도 나 자신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변호를 하고 싶지도 변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며 벌거벗겨진 나의 비굴함을 마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자기반성이었다. 암세포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던 약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저 괜찮다, 그래도 고마운 일이었다고 하는 아버지에게 어쩌면 내성보다 더 잔인한 것은 아버지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내성 앞에 아버지를 쉬이 포기하는 나의 비굴함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라는 존재는 왜 하염없이 괜찮다고만 해야 하는가.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숨겨지지 않던 슬픈 미소가 선연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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