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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만들기

by 소연

30년 이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고민은 많았지만 결단을 내렸다.

건강상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반 주부들처럼 낮에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도 하고, 일요일 저녁에 몰려오는 내일에 대한 긴장도 하지 않고, 취미생활을 좀 더 발전시키고 등.


'여유로운 나의 시간에 어떤 것부터 시작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내 옷은 어느 정도 잘 만들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옷을 만들기에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때였다.

'아하! 옷 만들기 강좌를 신청해야겠다. 이제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추었다고 생각하니까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야징~.' 내 손가락과 눈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대부분의 강좌는 문화센터. 하지만 난 그 수준이상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미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고(ㅋ ㅋ ㅋ). 전문과정을 찾아보았다. 폴리텍대학에 그 강좌가 있었다. 수강료가 공짜였던가? 매우 저렴했던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수강장소가 대구였다.

불가능.

실망.


다시 검색을 하다 보니

서울중부기술교육원에 '한복 만들기' 6개월 동안 진행되는 강좌가 있었다.

'한복?'

'뜬금없이?'

'한복도 옷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이참에 한복 만들기를 배워서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주에게 내가 지은 한복을 선물해 보~~ㅏ?'

또 설레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시작이 시작된다.


중부기술교육원에 개설된 한복의상과에 입학을 했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자 직장까지 그만두었는데, 결국 나는 이곳으로 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진행되는 과정이다. 하루 일정이 무지 고생스러운 과정이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히 서둘러야 하는 일정이었다.


내가 미췄어~~. 미. 쳤. 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너무 힘들면 포기할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정말 새로운 환경과 낯선 사람들과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교수님들도 유쾌하시고 좋으신 분들인 것 같았다. 공업용 재봉틀과 책상으로 가득 찬 꽤 큰 강의실에서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거기에 온 학생들은 다양한 연령대로 실력차이도 천차만별이었다. 양장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양장기능사 자격증은 없지만 양장에 대한 흐름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공업용 미싱은 처음이라 사용방법을 익히고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한복은 양장과 많이 달랐다.

교수님께서는 모두 다 새롭게 배우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5세 여아 저고리를 만들었다.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원단이 국사라 다루기가 매우 어려웠음), 박음질하고, 깃 달고, 고름 달고, 다림질 등 많이 어려웠다. 하루종일 무척 매우 힘들었다. 어렵지 않은 공정이 하나도 없었다. 배운 것도 생소한 것이라 그런지, 교수님이 질문하시면 '멍~' 멋쩍어서 웃음으로 대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저고리 완성!


"어 우~~, 뭐야! 완전 귀여워!"

너무너무 좋았다. 서로 자기가 만든 저고리를 보여주며 난리법석이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여아 치마, 남아 저고리, 남아 바지, 여아 색동저고리, 성인 민 저고리, 성인 삼회장저고리, 성인 치마, 성인 속치마, 여아 당의, 남아 풍차바지, 여아 풍차바지, 남아 마고자, 여아 조바위, 도령모자, 호건 등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냥 교육과정에 따라 앵무새처럼 따라 하니까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배운 것을 기억해 내며 첫 공정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받으며 필기했던 노트를 참고하여 패턴을 그리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원단을 구입하여 딸의 한복을 만들었다. 잘못해서 뜯고, 고치고, 또 뜯고 수정하며 치마와 저고리를 완성했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며 한복을 만들어 보니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체형이 각각 다르고 사이즈도 각각 다른 사람에 맞춰 저고리를 만든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작업이다.

내가 만든 딸의 저고리와 치마는 입고 다닐 정도의 수준은 되었지만, 부족한 점이 발견되고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부 삼아 연습 삼아 저고리와 치마를 하나씩 더 만들었다. 조금 더 상태가 좋은 옷이 만들어졌다.

'역시 연습. 연습이 최고여~'


다음엔 내 꺼 만들기 도전.

결혼할 때 한복을 여러 벌 받았는데, 입을 기회가 없고 격식을 차릴 대 입는 것이라 아직도 한 번도 입지 않은 한복도 있다. 그래서 전통한복보다는 양장과 결합한 한복을(민소매 원피스(치마)에 저고리)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저고리는 아주 과감하게 붉은색 바탕에 금박무늬가 있는 원단으로 소매를 양장식으로 하고 깃과 섶은 전통식으로, 고름은 가늘고 짧게 만들었다. 치마는 검은색 스웨이드 원단으로 하이웨스트 절개선으로 앞 트임을 주고, 안감은 붉은색으로 만들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날 교수님과 동료들의 칭찬을 많이 받아서 흐뭇했다.


한복의상과 졸업식 날에 이 생활한복을 입고 그 위에 코트를 입고 갔다.

덕분에 의상상을 받았다. ㅎㅎ


설 명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 한복을 입고 차례를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고 ~.

하루종일 입고 지냈다. 친정에 갈 때에도 나와 딸은 내가 직접 만든 한복을 입었다. 딸은 쑥스럽다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챈 듯 기꺼이 예쁘게 입어주었다. 친정에 모인 가족들은 예쁘다며 신기한 듯 웃었다.

기분 좋고 뿌듯함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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