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by 소연

날씨가 아침부터 흐렸어요. 일기예보에 비가 올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콩이 엄마는 우산을 챙겨 주셨어요. 콩이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산을 챙기는 것이 귀찮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지 못하고, 옷이 젖는 느낌도 좋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등교하는 시간에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날씨가 꾸물꾸물 더 흐려지더니 공부시간 중에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비가 와요.”

“정말 그러네. 일기예보가 딱 맞았네. 너희들 우산 가지고 왔지? 오늘 밤까지 비가 계속 올 거라는 예보를 들었는데~”

“엄마가 우산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산을 가져왔다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뚱이는 곤란한 얼굴로 “저는 엄마가 말했는데 깜박하고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괜찮아.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여분의 우산이 청소함에 있어. 뚱이에게 빌려줄게.”라고 말씀하시며 뚱이를 안심시키셨어요.


“선생님은 비가 오니까 차분해지고 나름 분위기가 좋네.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할까?”

“선생님, 커피 한 잔 드세요. 비 오는 날은 달달한 커피 맛이 좋은 거 아니에요?”

“뭐라고? 누가 그래?”

“우리 엄마가 비 오는 날은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가 당긴다고 하시던데~”

선생님은 “고마워. 이따가 쉬는 시간에 콩이 말대로 달달한 커피 한 잔 해야겠네.”라고 말씀하시며 콩이를 보고 웃으셨어요.


콩이는 이 분위기를 타고 “선생님, 비 오는 날 어릴 때 추억 이야기 해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이 기회를 놓치기 아깝다는 듯이 입을 모아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못 이기는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선생님 어릴 때 우리 집에는 꽃밭이 있었어. 거기에는 채송화, 과꽃, 달리아, 해바라기를 주로 심었었지. 달리아를 제외한 다른 꽃들은 봄에 씨를 뿌리면 새싹이 나와. 그 싹이 조금 크면 아주 빽빽하게 뭉쳐 있어. 비 오는 날이면 땅이 축축하게 젖어 있으니까 엄마는 그 뭉쳐 있는 작은 식물을 몇 개씩 뽑으셨어. 빽빽하게 있으면 잘 자라지 못하니까 솎아내기 위함이지. 그리고 뽑아낸 식물들은 아까우니까 다른 곳에 옮겨 심거나 동네 친구 집에 나눠 주기도 했어. 우리 집에 없는 식물은 친구 집에서 가져오기도 했어. 우산 쓰고 핑계 삼아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기도 했지. 참 재미있었던 같아.”

“재미있었겠다. 더 듣고 싶어요. 또 없어요?”


“또? 좋아. 1개만 더 얘기해 줄게.”라며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 선생님 집 마당에 수돗가가 있었어. 수도꼭지가 1개 있고, 그 주변에 엄마가 일하시기 좋게 시멘트를 발라 뭔가를 씻을 때 편하도록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어. 여름이면 여기서 등목도 하고 김치거리도 다듬고 생선도 다듬고 빨래도 하는 등 다용도로 사용하는 수돗가였지. 여기서 사용하는 물이 잘 빠지도록 구멍을 내어 도랑과 연결했어. 요즘은 물이 빠져나가는 도랑을 모두 덮는 공사를 하지만, 그때는 큰 하수도까지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도랑이 있었지. 큰 하수도 구멍까지의 길이가 한 5m 정도 된 것 같은데~. 아무튼 비 오는 날이면 그 도랑으로 비가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도랑으로 물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서 수돗가에 시멘트를 발라 놓은 곳까지 물이 찰 때가 있기도 했어. 비가 적당히 오는 날은 그 도랑이 우리의 놀이터였어.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했지. 일단 종이배를 접어서 도랑에 놓고 종이배가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고, 그다음은 누구 배가 빠른가 시합을 했지. 그다음 종이배가 다 젖어 종이배로서의 역할을 못할 때쯤 고무신을 가지고 놀았어. 선생님은 검정고무신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고무신이 집에 있기는 했단다. 처음에는 고무신을 도랑에 놓고 시합을 하다가 고무신을 꺾어 배모양을 만들어 시합을 하기도 했어. 처음에는 우산을 쓰고 놀이를 시작하다가 재미에 푹 빠져 우산을 쓰지 않고 놀았지. 비가 많이 오면 도랑의 물살이 빨라져 고무신이 빨리 떠내려가기 때문에 뛰어야 고무신배를 잡을 수 있었지. 도랑은 마당의 평면에서 한 20 cm정도 파여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았어.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가 도랑에서 노는 것을 허락하셨지. 그렇지만 노는 것에 빠져 비를 홀딱 맞으면서 놀았어. 감기에 걸린다고 혼이 난 적도 있었어. 지금 이야기하면서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네. 자 이제 정말로 공부 시작하자.”

콩이와 아이들은 공부하기 싫었어요. 그냥 이 분위기로 비 오는 날을 즐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놀 기회를 잡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좋겠어요. 부러워요. 저도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의 추억을 갖고 싶어요. 선생님은 좋겠다.”라고 콩이가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선생님은 좋겠어요. 비 오는 날의 추억이 있어서. 우리도 만들어 주세요.”

아이들은 콩이의 말에 힘을 더 보탰어요.

“너희들 마음이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추억을 만들어 볼까? 그런데 선생님하고 약속을 할 것이 있어.”

“뭔데요? 무조건 약속해요. 약속한다고요.”

콩이와 아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어요.

“들떠서 너무 시끄럽게 나가면 안 돼. 질서 지키기는 기본이야. 그리고 운동장에 나가서 우산 쓰지 않고 마구 돌아다니면 안 돼. 감기 걸리면 너희 부모님이 선생님을 미워할 수도 있으니까. 또 한 가지 우리는 지금 수업을 하지 않고 놀러 운동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의 운동장에 있는 흙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비 오는 소리를 듣고 느끼는 공부를 하러 나가는 거야. 그리고 덤으로 추억도 만들려고 나가는 거다. 알겠지?”

선생님은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운동장에 나가는 명분을 그럴싸하게 만드셨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은 교과서를 책상 서랍에 넣고 자리를 정돈한 다음 우산을 들고 신발주머니를 챙겨 선생님을 따라 신나는 마음으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각자 우산을 쓰고 선생님을 따라 철봉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가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입에서 노래가 나왔어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길을 갑니다/ 파란 우산 검정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함께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어요.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총총총”

아이들과 선생님은 우산을 쓰고 노래를 3번 불렀어요. 아이들의 표정뿐 아니라 선생님의 표정도 무척 즐거워 보였어요. 운동장에는 콩이네 반 이외에 아무도 없어서 더 좋았어요. 뭔가 자신들이 더 특별한 경험을 하는 듯했거든요.

선생님은 학교 건물에서 많이 떨어진 철봉 앞에서 멈추셨어요.

“우리 이제 운동장의 흙들이 어떤 모습인지 관찰해 보자. 이 수업은 형님들 수업이지만, 우리는 지금 하지 뭐. 각자 우산을 쓰고 운동장의 흙들을 관찰하고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다시 여기로 모이는 거야. 우산은 꼭 쓰고 뛰지 말고 관찰하는 거야. 알겠지? 너네들 믿는다.”

아이들은 비교적 주의사항을 명심하며 흙의 모습을 관찰했어요.

운동장에는 작고 가는 길이 여러 개 나 있었어요. 비가 만들어 놓은 길은 여러 가지 모양이었어요. 어떤 길은 가늘고 길게, 어떤 길은 깊게, 어떤 길은 넓게, 어떤 길은 여러 개의 길이 합쳐 있기도 했어요. 그냥 운동장 바닥을 보며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어요. 아이들은 선생님 앞으로 모였어요. 선생님은 관찰한 모습에 대해 질문하셨고, 아이들은 가자 보고 느낀 것을 말했어요.


“자, 이번에는 귀를 기울여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 볼까? 1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만 듣는 거야. 시~작.”

선생님의 시작 소리와 함께 아이들과 선생님은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어요.

1분이 지난 후 아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들린 빗소리를 다양하게 표현했어요.

“툭 툭 툭, 타다닥, 뚝두드둑, 토다다다다, 톡톡톡, 투두둑, 톡토독” 등

이렇게 빗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던 경험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어요.


“선생님, 우리 운동장에서 한 바퀴 뛰고 들어가면 안 돼요? 운동장에 우리 밖에 없으니까 맘껏 한 번 뛰어 보고 싶어요.”라고 뚱이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이들은 이 기세를 몰아 선생님에게 뛰게 해 달라고 졸랐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비가 와서 미끄러워 넘어지기 쉽고 흙탕물이 바지에 튀어서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조금 애매한 말투로 “교실로 들어가기 좀 아쉽나 보네. 조심스럽기는 한데 ‘3초 비 맞기’ 해볼까? 감기 걸리면 안 된다. 알았지? 사실 선생님은 좀 걱정되네.”라고 말했어요. ‘3초 비 맞기 놀이’의 방법은 선생님이 “시작” 소리와 동시에 우산을 내리고 비를 3초 동안 맞는 거예요. 선생님의 “시작” 소리에 맞추어 우산을 내리고 비를 맞았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 콩이네 반 대부분의 아이들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비를 맞았어요. 선생님도 놀이에 참여했어요. 3초 동안이었지만 비는 눈과 코와 입으로 들어갔어요. 얼굴이 간질간질한 기분도 들었어요. 좀 웃겼어요. 선생님의 “그만”이라는 소리에 맞춰 우산을 다시 썼어요. 이 놀이를 2번 더 했어요. 재미있었어요. 콩이와 친구들은 더 이상 선생님을 조르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자기들의 기분을 많이 맞춰주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볼이 조금 상기된 얼굴로 아까 불렀던 노래를 부르며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어요.


콩이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함께 한 오늘의 놀이 덕분에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을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한 소중한 경험인 비 노래 부르기, 운동장에 만들어진 빗길 관찰하기, 빗소리 듣기, 3초 비 맞기를 생각주머니에 넣어두었어요. 시간이 흘러 흘러 비 오는 어느 날, 이 추억이 떠오르면 조용히 미소 지으며 행복해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콩이는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신나게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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