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쓸 만한 용기

일상의 권태로움에 지쳐있을 누군가를 위하여

by 광현

평범한 일상을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용기'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도전한다' 고 말하면 부담스러운데, '용기를 낸다' 정도로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가벼워진다. 도전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단어인 반면, 용기는 일단 마음을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수받을 수 있는 따뜻한 말인 것 같아서 좋다.


귀찮아서 오랫동안 묵혀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나는 용기를 점검한다. 켜켜이 쌓아 온 자기 불성실을 대면하는 일도 알고 보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쫄보인가?' 라고 생각하다 보면 '에이 까짓거 하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그 일을 해버리게 된다. 자존심이 귀찮음을 이기는 걸까. 내 무거운 엉덩이를 떼는 데 여러 번 효과가 있었다.


원래 난 용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상이 굴러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뭔가에 달려들어 괜히 힘 빼는 일이 결코 없었고,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선함은 대학교 입학, 군입대, 취업, 결혼과 같은 보편적인 미션들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웠다. 서른 살 까지는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이에 걸맞는 몇 가지 관문들을 통과하고 나니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행복했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특별한 변화는 없겠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자꾸만 따라 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 없는 내일이 주는 답답함과 권태로움이 심해졌다.


막연하게 떠오른 건 이직이었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자아를 찾겠답시고 아내와 아이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일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요즘은 유튜브라는 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덕분에 방구석에 앉아 와인, 커피 브루잉 같은 몇 가지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스트리밍 추천곡만 듣던 내가 관련된 책까지 잔뜩 사다 읽으면서 4개월 동안 재즈만 듣기도 했다. 갑자기 생각 난 지인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자원하지 않는 일에 한 번 쯤 손을 들어 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괜히 힘 빼는 일'로 치부했던 것들이었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들은 아니었다. 자꾸만 익숙함을 향해 흐르려는 나의 마음을 거슬러 약간의 어색함과 서투름을 감내하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소한 용기가 내 일상에 가져다준 풍요는 절대 작지 않았다. 살면서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내가 이런 걸 좋아했어? 하며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 상관없던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루하루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그 틈 사이에 자잘한 설렘이 끼었다. 어렵지 않게 냈던 작은 용기들이 참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도 그 결과물 중에 하나다. 회사 동료들을 대상으로 몇 편의 칼럼을 쓰는 활동에 지원했는데, 하다 보니 내 본업보다 적성에 더 맞았다. 글을 매개로 영감을 주고받는 일이 즐거웠고,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슬램덩크를 보면서 철 없이 꿈꿨던 농구선수를 포기한 게 열세 살이니까 대략 20년 만에 처음으로 꿈이라는 게 생겼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과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용기가 없어 느끼는 좌절감이 요즘 시대에 얼마나 보편적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나 역시 그랬고, 여전히 자주 그런 상태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날마다 곱씹는 일이 얼마나 힘 빠지고 구질구질한 일인지도 잘 안다. 그 마음을 끌어안고 매일을 살아내느라 지쳐있을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이 공간에서 나눌 내 짧은 경험과 생각이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에 작지만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