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3집 <사람의 마음>
(커버 사진 출처: kihafaces.com)
찜찜한 퇴근길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수와 회의 내용에 대한 기억 차이가 있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팀장님을 끌어들여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부터 왠지 사수가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닌지 걱정됐다. 좀 더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나서서 사과하기도 애매했다. 평소에 날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봤냐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었고, 결국 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차에 올라탈 때까지 불편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운전석에 앉아 노래를 골랐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을 뒤늦게 정주행 하던 중이었다. 정규 3집 <사람의 마음>을 리스트에 담았다. 앨범과 제목이 같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첫 곡으로 흐른다.
"이제 집에 가자."
말과 노래 사이 어디쯤에 있는 첫마디가 '툭' 하고 떨어진다. 마치 당장 해결 못 할 일로 골머리를 앓는 나에게 친한 친구가 하는 얘기 같다. 사정도 모르고 무심하게 말하듯 시작된 노래는 후렴에 가까워질수록 농도가 짙어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기타가 메인이 되는 시원한 사운드 위에 위로의 가사가 얹힌다. 네 상황이 어떤지 아는데, 그런다고 해결 안돼. 일단 좀 쉬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대방의 마음과, 그것을 지레짐작하며 혼자 끙끙대는 나의 마음. 사람의 마음은 네 것이든 내 것이든 참 다루기 어렵다.
이어지는 노래들의 주제는 참 일상적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때, 공들였던 이성과 결국 잘 되지 않았을 때, 어젯밤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와 같은 평범한 상황들과 그때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우리 삶에서 '사람의 마음'을 비껴갈 수 있는 장면이 얼마나 될까. 모두 마음과 얽힌 일들이다. 이런 앨범 제목은 좀 반칙 아닌가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로큰롤의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다는 이 앨범에는 대체로 신나고 강렬한 노래들이 담겼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노래로 사람의 몸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는 소개글을 읽고, 운전대를 드럼 삼아 때리며 다섯 번째 곡 '올 생각을 않네'를 고래고래 따라 부른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쑥스러웠다.
전인권이 피처링한 열한 번째 곡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Pt.2'를 들으며 마치 공연이 끝난 것 같은 시원섭섭함을 느끼고 나면 어느새 마지막 트랙이다. 직전 곡과의 대비에서 오는 낙차감이 정말 대단한데,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요리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 싸구려 박하사탕으로 입가심을 하는 기분이랄까. 노래가 후지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나는 이 정도의 넘나듦이 가능하다는 게 장얼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밤은 깊어 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가벼운 멜로디 안에 익살맞은 가사를 리드미컬하면서도 참 경박스럽게 욱여넣었다. 이제 집에 가자는 친구를 따라나서서 사랑 얘기, 사람 얘기로 실컷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야 이제 진짜 자자. 우리 내일도 출근해야지.
언젠가 사수와 뜨끈한 불판 앞에 마주 앉아 그때의 진심을 털어놓는 상상을 했다. 대단한 고민 같았는데 그렇게 평범한 장면이 또 없네. 그래, 원래 사람 마음이 참 어렵지. 살면서 그렇지 않은 일이 없었지. 오늘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책임님, 혹시 보고 계세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죄송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