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쌩폰 입문기
회사에 주차를 하고 거치대에 붙은 스마트폰을 떼어냈다. 그립톡이 달린 케이스를 다시 입히려다 문득 생각했다.
역시 아무것도 안 씌운 게 제일 예쁘네.
1년쯤 사용한 아이폰 11이다. 미끄럽지 않으면서 적당히 맨질맨질한 촉감과 손에 걸리는 곳 없이 부드러운 곡선, 평소보다 약간 가벼워진 듯한 무게감까지도 기분이 좋다. 케이스에 가려져 있던 노란색은 레몬 크림처럼 은은하고 영롱하다. 이 색을 고르면서 그렇게 설렜었는데 하며 2초 정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씌우려던 케이스를 그냥 차에 두고 내렸다. 어디 도망갈 일 없는 주머니 속 아이폰을 손에 꼭 쥐고 사무실로 향했다.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이걸 얼마 주고 샀는지 떠올려본다. 100만 원쯤 되는 기기값을 매달 할부로 따박따박 내고 있다. 내 소지품 중에 이렇게 비싼 게 또 있나? 결혼반지 말고는 없다. 이 정도 가격이면 내 기준에는 명품인데, 여태 꼬질꼬질한 실리콘 케이스로 싸매고 다닌 걸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나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스마트폰들은 예외 없이 낙상사로 생을 마감했다. 약정이 끝날 때쯤엔 꼭 유통기한이 정해진 것처럼 액정이 깨지거나 메인보드가 망가지는 일이 생겼고, 보험과 케이스는 자연스럽게 필수 옵션이 됐다.
문제는 케이스를 써도 별다를 게 없었다는 거다. 때가 되면 결국 고장이 났다. 물론 1년 만에 바꿀 것을 2년 동안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핸드폰 좀 굴려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고장이 나는 건 재수 없는 한 번 때문이다. 특히 액정은 몇 번씩 우당탕거리며 떨어져도 괜찮다가 어딘지 모를 급소를 바닥에 '콕'하고 찍는 어느 날 '쩍'하고 갈라져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다. 혹시 누가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통계를 들이밀며 "케이스를 사용하면 스마트폰 파손 확률이 분명히 줄어들어요."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오, 역시 그렇군요." 하고 말 것이다. 케이스의 필요성에 대해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이 물건을 제대로 쓰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불현듯 들었을 뿐이다.
내가 아이폰을 쓰는 이유는 뭘까. 시리를 포함한 다양한 기능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도 않고, 연동해서 쓸 맥북이나 애플워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애플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상징성, 소속감 같은 이유를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난 핸드폰 매장에서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예뻐서 샀다. 다른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유능하신 애플 디자이너와 연구원님들이 피땀으로 빚어낸 100만 원짜리 아름다움. 나는 왜 그것을 부연 케이스 틈에 낀 먼지 같은 걸 닦을 때나 겨우 한 번씩 누리고 있는 것인가. 깨 먹을 게 겁나면 애초에 사질 말아야지 이런 자발적 호구가 또 어디 있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 앞으로 이 물건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이제는 쌩폰이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엄청 반긴다. 이번 기회에 그 덤벙대는 성격 좀 고쳐보라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것에 어울리는 태도와 사용법이 존재한다. 쉽게 줄어드는 옷은 건조기에 돌리면 안 된다거나, 커피를 마실 땐 감당할 수 있는 카페인을 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작고 여리한 아이폰 주인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애초에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부주의함은 내가 생각해도 도를 넘었다.
케이스를 벗긴 지 3일째. 아찔한 순간들이 벌써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 이런 건 진짜 하면 안 되겠구나.' 하면서 내 마음속 쌩폰 매뉴얼을 꾸준히 업데이트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어깨에 끼우고 통화하면 안 된다. 케이스를 했을 때보다 확연히 더 얇고 부드러워서 조금만 힘이 빠져도 쉽게 흘러내릴 수 있다. 지난 주말 편의점에서 그 상태로 통화를 하다가 핸드폰이 주르륵하고 떨어졌다. 다행히도 물건을 안고 있던 팔 위에 안착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일이나 운전을 하면서 무릎 위에 올려두는 것도 위험하다. 어제도 그렇게 둔 걸 까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쌩폰을 사무실 바닥에 굴렸다. 나도 모르게 "으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엎어진 핸드폰을 뒤집어 들었다. 멀쩡하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그 밖에도 다른 소지품과 함께 한 손에 들지 않기, 볼일 보면서 휴지걸이 위에 올려두지 않기, 네 살 된 아들 손에 닿는 곳에 두지 않기 등이 있다. 여태껏 스마트폰을 쓰면서 내 몸에 밴 여러 습관들을 하나하나 고쳐야 했다.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은데도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책상 위에서 반짝거리는 노란색 아이폰을 볼 때마다 마냥 기분이 좋고,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 강하게 든다. 이유가 뭘까.
내 마음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폰의 옥체보존이 아니라, 예쁜 디자인이 주는 좋은 감정을 매 순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그걸 알고 나니까 더는 케이스를 씌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름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거다. 그동안은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제대로 몰랐을 뿐이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 다른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 할 시도도 포기도 못 한 채 어정쩡하게 붙들고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그 일을 정말 얼마나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내 마음이 한없이 작을 수도 있다. 그땐 쿨하게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의 경우라면 그 큰 마음으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이기고 한 걸음 뗄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땐 한 달 뒤에도 무사히 쌩폰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쌩폰을 쓰든 케이스를 씌우든 한 달 뒤에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내 마음을 부지런히 들여다보는 일. 그거 하나만 잊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