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한 업무동향지표를 발표했습니다. 11개국 2만명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었는데요.
생산성에 대한 직원과 리더의 견해 차이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직원의 87%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생산적이라고 응답한 반면, 리더의 85%는 근무 방식의 변화로 직원의 생산성을 확인하기 어려워졌다고 답했습니다.
사회가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 대신 하이브리드 근무를 선택한 기업들이 많다고 하지만, 새로운 근무 환경에 걸맞는 생산성의 정의, 평가 방식 등의 내부적인 합의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김형규 인사부문장은 한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생산성을 정의할 때 관리자는 실적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팀원들은 산출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평가에 있어 업무의 임팩트가 아니라 진행 과정과 구성원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이라면, 하이브리드 근무의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예외 없이 코로나19를 경험한 후임에도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꾸준히 일 문화의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기업이 있는데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입니다.
지난 7월, 우아한형제들은 2023년 1월 1일부터 근무장소와 시간을 모두 자율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무실, 집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고, 주가 아닌 월 단위로 근무 시간을 분배해 더 유연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제도의 취지에 대한 김범준 대표의 설명입니다.
우리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자율을 기반으로 한 선택적 근무제도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요즘 일 잘하는 문화를 표방하는 기업들은 많지만, 우아한형제들이 갖고 있는 '일하기 좋은 회사'에 대한 진심은 꽤나 오래전부터 집요하고 일관성 있게 이어져 왔습니다. 주요 경영층의 과거 메시지들을 모아봤는데요.
월급 많이 주고 복지혜택이 많은 '좋은 회사'와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는 다른 것 같다.
- 2015년 김봉진 대표 인터뷰
다니기 편한 회사가 아니고,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회사를 운영하는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 2017년, 인사 총괄 박세헌 수석 강연
우아한형제들은 물론 다니기 좋은 회사이만,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일하기 좋은 회사'다.
- 2022년, 곽지아 HR 실장 아티클
우아한형제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은 단순히 유행을 따르거나 채용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동안 화제가 되어왔던 주 4.5일제, 32시간 근무제, 200만원짜리 허먼밀러 의자, 내년부터 도입될 근무지 자율선택제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내부적인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보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근무 형태의 실질적인 정착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우아한형제들이 이렇게 변화를 계속해서 주도해 갈 수 있는 건 단순한 제도의 도입에만 치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정의하고 그것을 조직 안밖을 향해 설득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에 걸맞는 새로운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문화적인 DNA가 꾸준히 축적되어 왔던 것이죠.
저도 9년 가까이 한 직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변화를 경험했지만, 문화라는 건 단순히 제도적인 변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명문화된 제도가 정의하지 못하는 가치,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위해서는 회사가 나서서 제도를 도입한 목적과 함께 논의해야 할 아젠다를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제시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조직들도 많습니다. 내부 불만을 해소하거나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쟁하듯 제도적인 유행을 좇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다수 기업들의 현실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구성원 입장에서 아쉬움이 들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한편으로 그런 상황일수록 개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선언된 제도적인 변화 안에 나는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지, 내 자리에서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지 보다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볼 수 있는 것이죠. 제가 좋아하는, 구글의 인사부문을 총괄했던 라즐로 복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
뛰어난 팀이나 회사는 창업자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다. 그러나 창업자가 된다는 것이 회사를 창업한다는 뜻은 아니다. 창업자가 되고 또 자기가 속한 팀의 문화 창조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뜻이다.
회사 전체의 창업자가 아니더라도 팀, 가정, 문화의 창업자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법률적인 소유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당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이 한 일, 그리고 당신의 회사와 팀에 대해서 하게 될 이야기를 생각하라. 지금 당신에게는 그 이야기의 설계자가 될 기회가 주어져 있다. 창업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직원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
- 책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중
* 스타트업 미디어 아웃스탠딩 기고글의 요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