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통장(수시적립형) 개설 안내

브런치 매거진 컨셉 고민 - 컨셉이 없는 게 컨셉입니다.

by 광현


브런치에 글도 몇 개 없으면서 매거진만 만들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어떤 내용이든 진짜 내 얘기를 쓰고 싶은데, 주제를 정하기만 하면 그게 자꾸 족쇄가 돼서 왠지 어딘가 있을 법한 글을 쓰게 되는 게 싫었다. 삽질을 해도 한 구멍을 파야하는데, 여기가 맞나 저기가 맞나 기웃대는 내 꼴이 답답하다. 노트를 끄적이며 고민해본다.


목적과 방향을 모르는 생각이라면 그건 '잡념'이다.

그래 잡념... 그럼 나한테 지금 필요한 건

잡념을 쏟아낼 통... 통장? 잡념통장?


왠지 양념통닭 같기도 한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빨리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머릿속을 휘젓는 통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그 고민들을 스스로 '잡념'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내 아이디어 노트. 실물통장 쯤 되려나.


이 통장에 수시로 적립한 하찮은 생각들에 이자가 붙어서, 언젠가 그럴싸한 책 한 권이 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잡념통장. 자기 생각을 잡념이라고 정의하는 적당한 겸손과, 그래도 언젠가 그걸로 뭔가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버무려진 이름이다.


'사춘기 30대의'라는 말은 너무 식상해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의 내 상태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춘기는 '봄을 기다리는 때'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금 내 인생은 여름일까 겨울일까. 아니면 가을? 모르겠다. 요즘 너무 머리가 아프다.


자유롭게 수시로 쓴다는 의미로 (수시적립형) 을 붙이고 싶었는데, 매거진 제목에 기호는 못쓰고 괄호를 빼도 글자수 제한을 넘겨서 포기.


사춘기 30대의 잡념통장


근데 스스로 뿌듯해하며 붙인 이 제목과 컨셉도 조만간 시덥잖게 느껴지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벌써부터 "인간아, 제발 뭐 하나 끝을 좀 내봐라"하며 자책하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것 같다.


아내가 내 고민을 위해서 기도를 해준다기에, 기획력 말고 실행력이 생기게 기도 좀 해달라고 했다. 이번엔 동네 뒷 산 정도는 넘어보자 제발.



마음에 드는 글귀들을 노트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이 글을 쓰는 것 마저 완벽하지 못해서 웃음이 난다. 보면서 쓰는 데도 틀리다니. 역시 나답다.


말장난으로 포장은 했지만 이 매거진은 결국 컨셉이 없는 게 컨셉이다. 울타리 없는 판을 깔았으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뭐든 편하게 쏟아내 보자. 여기에 글을 쓰는 동안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꼭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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