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 발견하기
[전략]
요즘은 어떤 생각들 하고 있는지요?
저는 매니저님 연배 때
더 넓은 바깥세상을 그리고 있었네요.
진정한 자기다움은 자기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과 연결될 때 명징해 지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위해 아내 하고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때이기도 해요.
30대... 말만 되내어봐도 싱그럽네요.
멋지게 채워가시길...
[후략]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교수님이 계시다. 사내 교육 강사와 수강생으로 아주 짧게 만났는데, 내가 뜬금없이 안부 메일을 보내도 항상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때마다 이런 진심 어린 격려와 조언으로 나의 앞날을 응원해주시는 고마운 분. 교수님과 메일을 주고받고 나면 항상 긍정적인 두근거림이 생기곤 했다.
자기 다운 인생을 산답시고 내 생각, 내 취향, 내 이야기에만 골몰한 기간이 꽤나 길었다. 점점 외골수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던 차였다. 교수님은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인생에 서툰 청춘이 자기다움을 향한 여정의 어디쯤 와 있는지 빤히 알고 계신 것처럼 '세상과의 연결'을 말씀하셨다.
나도 이제 8년 차 월급쟁이다. 이렇다 할 전문성 없이 연차는 쌓여가는데, 과연 이 회사가 나를 언제까지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뾰족한 수 없이 시간만 흐른다.
관심 없던 재테크나 운동, 취미생활을 전전하면서 그 답 없는 고민을 외면하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덮어뒀던 불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기다 더운 날씨와 코로나, 육아를 핑계로 자꾸만 게을러지는 일상. 하루하루를 간신히 때워내고 있는 요즘이다.
근래에 가장 활력이 넘쳤던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보았다. 회사에서 글쓰기 활동을 하던 때이다. 글감이 될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 이것저것 보고 읽었다. 나의 모자란 생각을 글로 옮기고, 얼굴도 모르는 회사 동료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날이면 하루 종일 댓글과 조회수를 살폈다. 설레고 즐거웠다.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때였다.
글쓰기를 만나고 마치 인생의 업을 찾은 것처럼 기뻤다. 활동이 끝난 뒤에도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개설했다. 작가 심사를 한 번에 통과했을 때 역시 난 재능이 있나 보다 하며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쓰는 사람들'이 주로 모인 이 공간에서 그때만큼의 감흥을 얻기는 힘들었다. 글을 올린 뒤 반응을 기다려보아도 내 알림창의 지분은 자신의 브런치에 방문해주길 바라는 작가님들의 기계적인 라이킷이 90%였다. 일단 쓰기만 하면 누군가 감탄하며 좋아해 줄 거라는 어린애 같은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흥미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몇 번 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지만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브런치에 남긴 글이 고작 열 편 남짓. 글쓰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끈기와 묵묵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지 않게 되면서 내 일상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시들해졌다.
"진정한 자기다움은 자기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상과 연결될 때 명징해 지기 때문에..."
교수님의 메일을 여러 번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걸 찾아내서 세상에 알리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뿐이었다. 그렇게 소모적인 여정이 재미있을 리 없다. 세상이 주는 것들을 부지런히 받고 내 방식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덕분에 이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몇 주째 가방에서 잠자고 있는 책부터 일단 펼쳐야겠다. 모처럼 아내와 예능이나 영화를 보면서 웃고 떠들고도 싶다. 작년에 반짝하고 그만뒀던 러닝도 다시 시작해야지. 내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고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세상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연습을 천천히 해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다움과 업에 대한 나의 고민도 느리지만 분명하게 해소되길 기대하면서.
익명이긴 해도 사적인 메일 내용을 허락 없이 오픈된 공간에 옮기는 것은 분명 실례다. 하지만 교수님이 주신 소중한 메시지를 계기 삼아 나의 이 지루한 일상을 하루빨리 환기시키고 싶은 욕심에 뻔뻔하게 글부터 써 내렸다. 교수님께는 메일에 대한 답장 겸 이 글을 보내드리며 따로 양해를 구할 생각이다. 부디 언짢아하시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