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은 꿈을 채운다

꿈꾸는 어른

by 광현


꿈다운 꿈


요즘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유튜버다, 연예인이다, 공무원이다 하는 얘기를 가끔 접한다. 그때마다 나 역시 보통의 어른들처럼 '요즘 애들은 꿈다운 꿈이 없구나',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데' 같은 씁쓸한 염려를 하곤 했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묻고, 어른들에게는 '꿈의 직장'을 묻는다.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회사가 몇 군데 있다. 이때의 '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높은 연봉, 좋은 복지와 근무환경 같은 조건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 정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과 비교할 때 어떤가? 음... 적어도 나는 그 아이들을 훈계할 입장이 못 되는 것 같다.



장래 희망 '없음'


지금의 내 체격으로는 상상이 안 가지만, 어릴 때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서 농구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그 후로는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물으면 그냥 없다고 썼다. 누가 안된다고 말한 적도 없었는데 그냥 그랬다. 새로운 답을 찾지는 못했고, 그때부터 내 꿈은 쭉- '없음'이었다.


꿈이 없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시키는 공부 나름 열심히 했고, 무난하게 대학에 들어갔고, 어려웠지만 결국 취업도 했다. 그런데 덮어뒀던 문제는 직장인이 되어서야 터졌다. 언제부턴가 눈앞에 있는 일에는 통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꿈이라는 빈 상자를 자꾸만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때 고민했어야 했다. 장래 희망이 '없음'으로 바뀌었던 그때, 상황의 심각함을 알고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겪었던 무기력과 결핍은 아마도 그 대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마음


나는 매사에 분명한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예쁘다고 하는 옷을 사서 입고, 먹자는 거 군말 없이 먹고, 둘이 데이트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취미도 없는 그런 사람. 근데 생각해보면 꿈이라는 건, 결국 무언가를 좋아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내가 슬램덩크를 보고 그냥 농구가 좋아서 장래 희망을 농구선수라고 썼던 것처럼. 꿈과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30대 직장인이 먼저 되찾아야 할 건 다른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사가 김이나 님의 꿈에 대한 글을 옮겨본다.


아직 꿈이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가 자연스럽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끌려 탄생한 꿈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준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 듯 꿈도 그렇다.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꿈인 사람은 글을 쓸 때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하기 대문에 거듭 글을 쓴 사람은 자연스레 필력이 늘고, 그러다 본격적으로 목표를 세웠을 때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책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근데 문제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그 자연스러운 감정이 언제부턴가 쉽게 생겨나지 않더라는 거다. 대충 보고, 대충 듣고, 대충 느끼며 흘려보낸 사소한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 감정과 감각을 다 덮어버린 것 같았다. 이 묵은 떼를 벗겨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좋은 게 좋은 거


언젠가 아내와 라면을 먹었다. 아내는 항상 너구리를 먹는데 그날따라 그게 너무 싫었다. 안성탕면을 먹자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내는 평소 취향 문제에 있어서 보통이 아닌 사람이다.


내가 평소에 그런 사람이 아닌데, 결국 그날은 내 라면을 따로 끓였다. 아내가 벙 찌더니 변했단다. 자기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게 아니라면서. 근데 나는 그게 어찌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던지, 벌써 3년 전 일인데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라면 하나에 뭘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매사에 갈등을 빚어가며 자기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죽어있던 감각과 감정을 돋우기 위해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때에는 가끔 이런 어설프고 치기 어린 시도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날 먹었던 라면이 더 맛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 감정에 손을 들어줬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과 기쁨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사소하지만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흔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자주 쓴다. 괜히 일 만들지 말고 쉽게 쉽게 가자고. 물론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다. 근데 항상 그런가? 내 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욕구를 그냥 스킵해버리는 일이 습관이 되면 정작 정말 나한테 '좋은 거'가 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저 말 사이사이에 단어 두 개만 더해보고 싶다.


'내가' 좋은 게 '진짜' 좋은 거


라고. 이제 좀 마음에 든다.



나는 어린 시절에 건너뛰어버린, 꿈다운 꿈을 갖는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30대 중반인 지금에서야 경험하고 있다. 머리를 굴려 세우는 꿈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낼, 이루지 못하고 품고만 살아도 기분이 좋은 그런 꿈을 기대하면서. 그러다 언젠가 나의 낡은 꿈 상자를 열었을 때, 거기에 '좋아하는 마음'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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