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젠가 Feb 05. 2024

시누이

당신의 평안을 빕니다.

나는 이상한 남자랑 결혼했다. 이상한 남자의 뒤에는 이상한 시댁 식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모의 돈이라는 강력하지만 사실은 비 현실적인 비전 아래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시부모는 자녀들을 지척에 두고 모든 일상에 관여하고 싶어 했고 강력히 지배하고 통제하였으며 그 무기는 물려주겠다고 한 사업장. 즉 돈이었다.


나이가 든다고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식이 자기 인생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자명한 진리를 역행했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상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결혼 후 일가를 이루고도 가족 사업에 참여하거나 부모로부터 부와 사업을 물려받으며 경제적 정서적 애착과 유착이 되고 경제 공동체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부모에게 자산, 사업장,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노하우까지 전수받으며 고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치열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고 윤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생을 살며 한 번쯤은 두 번쯤은 아니면 몇 번쯤은 거센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삶이 내 맘대로 내 뜻대로만 흐르는 게 아니다 보니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안온하고 윤택한 삶을 살던 사람은 그런 거센 풍파 앞에서 한 없이 유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진 풍파를 겪지 못한 인생은 결코 그 풍파를 견뎌내고 이겨낼 수도 없다. 나는 그래서 이제는 편안하고 안온한 인생이 부럽지 않다.


시부모에게 원망스러운 건 그 점이다. 자녀들이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시기, 자신을 단련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 청년기에 세상에 나아가 깨우치라고 하지 않고 내 품 안에 들어오라 한 것. 물론 부모의 품이 맞는 사람도 있다 .불행히도 내 남편은 아니였다. 부모가 지시하는삶에 그는 나보다도 먼저 지쳤다 아무리 봐도 그는 시모와같은 강력한 열정도 에너지도 없고 장사와도 맞지않았지만 어느 순간 돌이킬수없어서  그냥 시키는데로 살며 불행해했다

젊은 시절에는 깨지고 부딪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기에 그때는 세상과 맞서며 싸워봐야 한다. 그런데 중년 이후 자식이 딸린 사람이 누군가가 시키는 데로 그냥저냥 살다가 그 누군가가 사라지고 나서 뒤늦게 넘어지면 많이 아프고 다시 일어날 힘도 없을뿐더러 아직 준비 안된 가족들에게도 그 충격이 전달되기에 더욱더 불행하다.


결혼 후 시댁 식구들의 사고방식과 오랜 시간 길들여진 부모와 자식관계의 역동이 참 이상하다고 느낀 나를, 그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나는 이제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시부가 돌아가시고 보니 그렇게 자녀들을 쥐고 흔들었던 무기인 물려주겠다는 자산은 사실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잠깐, 아, 내가 결혼 후 잠깐 한때나마 뭐라도 물려받으려고 시부모가 지시하는 데로 살려했던 게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하고 깨우쳤을 뿐. 그리고 그동안 이미 시모에게 융화되고 동화되어 스스로 살길을 찾을 줄 몰랐던 나머지 시댁 식구들에게 시모의 뜻대로 안 살고 스스로 살길을 찾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시모에게 반역한 나쁜 년이 되고 이상한 년이 돼버렸지만 그동안 정신 차리고 내 길을 개척하려고 했던 게 참 다행이구나 나에게 또 감사했을 뿐.

실제로도 결혼 이후 시부모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나의 세상을 만드려고 한 노력들은 꽤 쓸모가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생을 살아 나간다는 것은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다.

결혼 후 시부모와 그 자녀들 사이의 역동에서 벗어나고 시부모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동안 나는 시댁 식구들과 단절을 선택했다. 내 남편은 애들의 아빠이니 남편과는 단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남편이지만 시부모의 자식이기도 하고 시댁 식구들의 구성원이니 저고리에 달린 단추만 떼어 내듯이 내 남편만 떼어 내서 들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내려 노력한 그 기간이 괴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시댁의 가족 역동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시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개척한 그 기간 동안 가장 마음에 걸린 건 내 손아래 시누이였다. 사실은 남편보다 더 그녀를 아꼈다. 시누이 역시 내 아이들의 고모 역할을 너무 잘했었다. 그녀는 내 아이들을 예뻐했다. 특히 내 큰아이는 고모의 사랑을 아주 많이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를 내 동생처럼 여겼기에 그동안 왠지 동생만 남겨두고 혼자 나만 빠져나온 느낌에 시달렸나 보다.


시부의 임종 후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나를 원망하며 울었다.

"언니가 많이 그리웠는데 왜 언니는 이제야 나타났냐. 왜 그동안 우리들을, 자신을 외면했냐" 하며 울었다. 그녀는 사랑받는 막내딸이었고 시댁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관계 모든 역동이 나와는 달랐으니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녀의 원망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때 그 순간 부모를 잃은 자식이니 자신의 슬픔과 애환을 투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조금 놀랐다. 적어도 그동안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 안다고 여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오라버니들이 부모의 영향 아래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 삶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 역시 그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었던 사실을 나는 안다. 심지어 유학 갔던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자리 잡고 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의지를 꺾고 귀국했을 때 한동안 힘들어했었던 사실.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부모의 업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자리 잡기 위해 애썼던 사실을 나도 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는 나를 이해할 것이라고 내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나 보다.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과거에 그녀의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했었는지, 내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자 나에게 퍼부었던 저주와 폭언들을 참을 수 없어서 내가 죽지 않고 살려고 단절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적어도 너는 나를 이해할 줄 알았다. 너도 결혼을 하고 보니, 시부모는 친정 부모와 다르다는 걸 겪었을 것이지 않느냐 하며 나를 방어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시누이.

내 친정 동생이 아니다. 어쨌든 팔은 안으로 굽는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는, 그 상황에서는 그녀가 가장 안타까운 존재이고 위로받아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들에게 기능적으로 기능하면 되는 존재. 그 자리와 장소에서 상주 역할을 훌륭히 치러내며 그들을 위로해주고 내 역할을 다하면 되는 존재였다.

 

사람이 떠나는 자리에 장례식을 치르는 건 사실 남은 자를 위하는 자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것이 있다면 3일간 그것을 잊고 지우고 산자들은 살아가라고 다짐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일 동안 시댁 식구들과 다시 한 공간에서 지내며 다시 밥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녀와는 어쩌면 다시 지난 시간을 잊고 마음을 트고 교류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동안 나를 그렇게 외면하고 내가 힘들 때 돌아보지 않던 일가친척들이 이제는 네가 이 집의 대표이자 맏며느리니 남은 어머님을 책임지고 잘 챙기고 남은 식구들을 잘 이끌어 가야 한다고 나에게 상징성과 책무감을 부여했을 때, 그 마음을 접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루아침에 집안의 기둥이 이제는 나라고 한다.

그렇게 강력하게 존재를 과시하던 어머님, 자식들을 손아귀에 쥐고 주무르시던 어머님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살길을 찾는 나를 보고 부모의 심기를 거스르는 불효를  저지른다고 힐난하던 그 시댁식구들이??

그동안 내 말만 들으면 잘 먹고 잘살게 해 줄게 하며 나를 지배하려던 시부모는 사실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우치자마자 스스로 내 먹고살만큼 정도는 살아내려고 홀로 고군분투 애쓰던 나에게 그렇게 뭐라 하더니, 이제와서는 그 시부모에게 동조하고 융화했던 그들이 너는 너 먹고 살 만큼은 일어났으니 이제 나보고 "네가 지혜롭게 잘하며 이 가족을 이끌어 가거라" 했다.

특히 시누가 그 상징성과 책무감에 대해 나에게 몇 번이나 부탁을 하며 앞으로 언니가 지혜롭게 중심을 잡고 시모, 남편, 내 남편의 동생 부부까지 잘 돌봐달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의례히 하는 말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이해할 만한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을까 싶어서 무겁고 답답했다.


 나를 쥐락펴락 하려다 맘대로 안되자 폭언을 퍼붓던 시모는 약한 존재가 되었고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겨우 발버둥 쳐 일어선 나는 강한 존재가 되었다. 그 깨달음을 얻자 슬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비로소 과거의 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시모를 미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냥 관조하게 되었다. 원망도 회한도 없이, 그때 나에게 왜 그러셨냐는 질문은 마음속으로 수없이 던졌지만 딱히 대답을 원치 않는다.


한때 좋아했던 시누에게 내 모든 감정과 한을 누르고 담담히 해 줄 수 있던 최선의 기원은

"네가 사랑받길 바란다. 사돈 시어른들은 좋으신 분들 같더라. 너는 나와는 다르게 시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길 바란다"였다.

어떤 관계에서는 혹은 어떤 장소에서는 그냥 그대로 조용히 관조하며 흘려버리는 게 중요할 수 있다.

내 속에 수많은 언어가 오가고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더라도 그저 입을 다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내가 지금 내 에너지와 힘으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관조해 주는 것이다.


그녀는 되도록이면 시집을 와서 삶을 꾸려간다는 게 이다지도 괴롭고 어려운 일이라는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괴롭고 어렵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굳게 다지고 눈물을 삼키며 용광로에서 철을 제련하듯이 나를 제련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고 누군가에게 길고 긴 가스라이팅을 당하다 거기서 벗어 나오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예쁘고 착한 내 시누이. 내 아이들의 고모. 시집와서 유일하게 마음과 말이 통했던 사람.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사람. 그녀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빌어본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다.

이전 01화 관조. meditatio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