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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Jun 03. 2024

암이 나에게 준것들.

이렇게 핀 꽃처럼

암 진단 이후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암 보험 그리고 명의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진단 자금은 정말 말 그대로 병휴직 동안 내 줄어든 소득을 커버해 주었고 남편의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수험생인 큰아이 교육비 걱정 없이 학원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이가 되기 전에 발견하여 좋은 의료진에게 깔끔하게 제거술을 받은 덕분에 전이의 소견 없이, 수술 후에 신지로이드(갑상선 호르몬 전구물질)를 복용해야 할 걱정 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6개월째 마이너스되는 사업에서 손을 놓지도 못하고 친정에서 돈을 빌려 그 부채를 상환해 달라고 요구하던 남편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재고해 볼 수 있는 자금이 되었다. 


그가 원하는 돈을 주는 대신 그와의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으려면, 그가 원하는 돈을 주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혼 이후 그를 따라 그의 고향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이만큼 자리 잡는 동안, 시모의 모진 억압 속에서도 나는 내가 애써서 이 모든 것을 이뤄냈다고 생각하고 내가 이룬 것들을 늘 축내기만 하는 존재라고 그를 원망해 왔다. 그런데 관계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사실 그도 많이 애를 썼다. 다만 그 사실이 나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 관계라는 게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내가 그를 위해 다 양보하고 참고 접고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만 믿고 직장과 부모님과 친구들, 결혼 전에 내가 이룬 것들을 다 포기하고 그의 고향에 내려와서 시모의 주장처럼 자신의 아들을 내조만 하는 삶을 살면 경제적인 풍요를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시모는 물려주겠다고 한 사업장을 물려주지 않았고 아들 며느리를 지척에 끼고 지배하고 쥐고 주무르려고만 했다. 남편은 지쳐갔고 나에게 약속한 것들을 주고 싶어 했지만 스스로 그런 것들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이 제3금융권에 마구잡이로 잡혀먹은 집을 구하기 위해 친정 엄마와 공조하여 법무사 사무실을 들락거리고 내 직장 신용으로 남편이 받은 대출들을 내 앞으로 돌려 조금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며느리의 도리를 강조하며 명절 노동을 하러 들어오라는 시모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시모는 나에게 이혼하고 꺼지라는 폭언을 하였고 동시에 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내 남편을 해고시켰었다.

나는 그때 시모에게서 나를 지켜주지 않은 남편을 많이 원망했지만 돌아보면 그 역시 시모 앞에서는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는 파리목숨이었을 것이고 약한 존재였었다. 그를 미워하기엔 그도 약한 존재이기에 내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삶을 사느라 어쩌면 암에 걸린 건 필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나는 드디어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정말로 나 스스로 내가 정말 원했던 방향의 삶을 살아볼 용기를 내게 되었다. 

 많은 것이 얽힌 경제 공동체이자 아이들의 아빠이기에 

내가 아픈 순간에도 나에게 제발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사업 자금을 요구하며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원망과 미움으로 남은 삶을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고 아깝고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갈 것 같아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그래도 아이들의 아빠이니 어떻게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마지막 순간까지 도와주고, 마지막 손을 내밀어 주자고 다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를 마지막으로 밀어주는 대신 이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내가 나의 힘으로 돌봐줘야 하는 대상은 남편이 아닌 내 자식들이다. 그렇기에 남편을 돌보고 일으켜주는데 내 에너지를 다 빼앗겨 버리면 내 자식들을 돌볼 수 없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를 끝내더라도 내 아이들의 아빠인 상황은 변치 않으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주겠다. 그게 그가 원하는 돈이라면, 어쩌면 가장 어렵지만 가장 쉬운 해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직장을 버렸고 친정과 멀어졌다. 시모를 참아내고 시집살이를 감내했다. 명절노동이나 며느리의 노동을 참아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맞벌이를 해서 집을 사고 위기의 순간에서 그 집을 지켜냈으나 결국 그가 또 원하는 건 내 신용으로 대출을 더 받든 지 집을 줄이든지 해서 돈을 해달라는 것이다. 부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았던 남편은 드디어 그 배를 갈라 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요구를 나는 들어주기로 했다.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내 배를 갈라 원하는 돈을 주고 제발 성공하길 빌어주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돈을 주는 대신  더 이상 그의 뒤를 봐주지 않을 수 있게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원하던 돈을 얻은 대신 나를 잃었다.

수술 전 마지막 검사를 받고 내려오며 나는 좋아하는 프리지어를 한단 샀다. 

나는 저 꽃들이 활짝 피어나면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앞으로의 나는 저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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