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더 무서운 게 많거든요.
다음 주는 수술 후 3개월 검진을 가는 날이다. 사실 저번달에 갔어야 하는데 복직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혼인해소에 대한 법적인 서류정리 등으로 내 몸을 돌아볼 여유가 나지 않았다.
안다.
내 몸이 가장 중요하고 내 건강을 내가 제일 먼저 돌봐야 한다는 사실.
그런데 암보다 더 무서운 것, 더 시급한 것도 있다.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결국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란 자각을 하였고
암이란 무서운 경험을 통해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존재와 나를 갉아먹는 존재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착실한 보험사는 진단금을 지급하였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 진단금은 천금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질병 휴직 중, 내 남편은 또 아픈 나를 압박하고 짜내서 무리해서 연 가게를 단 3개월 만에 다시 빚 만 잔뜩 지고 접고 칩거하며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암으로 수술을 받는 부인에게 그래도 너는 친정이 여유 있지 않냐며 그 또 그 빚을 해결해 달라고 졸라 댔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아파서 받은 돈으로 아이들의 교육비를 댈 방안이 마련되자 한숨이 돌려졌다. 그리고 내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원했던 일. 그렇지만 두려움과 미련 때문에 미뤄왔던 일.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한다면 해내야 하는 일인 이혼을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소장이 접수되자 회피의 전형인 전 남편이 현실을 부정하고 또 회피하고 도망쳐 버리면 어쩌나, 도장을 안 찍어 주고 모른 척 또 잠수 타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그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 끝에 결국 수용에 도달하였다. 이 이론을 제시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학자에게 다시 한번 탄복했다.
결국에 큰 일을 겪는 모든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거 아닌가. 이런 일을 단번에 수용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혼이 확정되자,
나는 전 배우자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문자를 보냈다.
사실이였다. 이번엔 도망쳐 숨거나 미루지 않아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가 양가 조부모 도움 없이 어린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애써야 했겠는가 육아를 위해 그 역시 큰 애를 썼다는것에 감사했다.
그는 나에게 네 잘못 하나도 없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답변을 했다.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으며 좋은 이혼이 어디 있을까. 모든 이별은 아프고 이혼은 나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삶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 지옥에 남아서 서서히 죽어가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내 삶을 살기 위해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의 가족으로 인해 불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이구나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의 모친에게 받은 상처들로 인해 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그가 잘되길 빌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그가 원하는 돈을 줬다. 진심으로 이 돈이 그에게 닿아서 그가 재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를 암에 걸리게 하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지만 내 아이들의 아비이기에 그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져서 재기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발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도움이니 그가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심플한 법칙인, 삶에서 기댈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라는 중요한 명제를 인식하길 바랐다. 내 삶은 내 책임이고 내 자식들도 내 책임이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힘을 내서 약속한 양육비라도 제 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또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해서 그의 부채를 탕감해 주고 헤어지려고 했지만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울며, 괴로워하며 엄마의 도움을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나에게 마지막 까지 말도 안 되는 괘변을 늘어놓았다.
자기가 이혼해 주고 이혼 서류를 보여주면 장모님에게 돈을 융통하기 좋지 않으냐 어차피 우리는 남이 되었기 때문에 장모님이 돈을 빌려줘도 그게 사위가 아닌 딸에게 주는 돈이 되는 거 아니냐는????????????????
이미 마음으로는 정리가 되었지만 아이들의 부모로서 유지하기로 한 혼인 관계였었다. 그런데 내가 암에 걸려보니 아무리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가 중요하지만 혼자 일어날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기대려고 하고 무수한 실패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로 안 되는 시도를 계속하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배우자와 처가식구들에게 끝없는 불안요소를 제공하는 사람을 내가 쳐내지 못한다면 결국엔 내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내 자녀들에게도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만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실패 없이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 하지만 돌아갈 수 도 있고 넘어질 수 도 있고 가시밭길을 걸으며 피 흘릴 수 도 있다. 건강하고 충만한 인생은 편안하고 팔자 좋은 인생과 동의어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지금은 비록 아파 넘어졌지만 원인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의지와 인식이 있기에 먼 길을 돌아가지만 결국 인생의 항로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막상 서류가 정리되자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면 어쩌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특히 아직 어린 둘째 아이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형보다 더 큰 사춘기를 겪을 것임이 예견된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말할 것이다. 혹여나 아이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걸 느낄 틈도 없을 만큼 더 큰 사랑을 줄 것이다. 내 선택으로 인해 아이가 부모에게 실망한다면 혹은 배신감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삶의 동력을 상실한다면 어쩌지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나는 나를 다잡는다. 내가 아주 많이 많이 나를 사랑해 주자. 그 사랑으로 인해 암도 극복하고 더 건강해지고 그 사랑이 아이에게 흘러가 엄마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평안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지나갔다. 많은 것이 해결되었고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비교적 평안하게.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단골 카페에 가서 플랫화이트를 마셔본다.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 후 외래 진료를 가볼 생각이다.
****부족한 제 글을 기다려 주신 구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통해 치유받고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글조차 쓸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오게 되었네요? 다행히 치유의 행위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 까지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연재를 마무리 해 보려고 합니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것 역시 제 인생이고 제 삶입니다. 아픔과 고통을 공유하는 일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삶 안온한 삶만 있는게 아니죠. 힘들었지만 극복해 가는 과정을 쓰는 일에 대해서 저는 당당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일에 기쁨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