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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May 27. 2024

수술 후 요양병원

출산 후 조리원에서 산후 조리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수술 후 암 요양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하여 요양을 했다. 출산한 산모가 조리원에서 조리하듯이 나는 요양병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사실 시간과 돈이 많았다면 한 달은 지내고 싶었지만 현실에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일주일. 사실 일주일 동안 지내며 집에 두고온 아이들이 너무나 걱정되서 애가 탔다. 


보통 요양병원 입원은 비급여이기 때문에 실손보험이 가입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입원을 해야 한다. 요양병원에서 요양하는 비용은 수술과 입원 비용보다 더 많이 들기도 한다. 암환자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회복을 도와 준다는 고가의 비급여 치료를 선택해야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에 나의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상황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의 밥을 챙기고 숙제를 봐주고 살림을 꾸릴 엄두가 안 났다. 아이들 밥이 아니라 내입에 들어갈 밥 한끼 챙기기도 힘들것이 분명하다. 

남편은 여전히 암환자인 부인에게 기대서 자기 실패를 수습하길 원하고 있고, 내가 그를 일으켜 줄 때까지, 결국 그가 원하는 돈을 어떻게든 구해서 내놓을 때까지 그는 넘어져있을 작정인것 같으니 그에게 일상의 도움이나 간병을 바랄 수도 없는 현실. 

내 남편과 살며 내 남편이 주저 앉을 때마다 일으키며 깨달건  아이들을 키워내고 교육시키려면 내가 평생을 일해야 한다. 나라도 정신차리고 굳건하게 버텨야 내 애들을 건사할 수 있겠다는 사실이였다. 앞으로 남은 긴 시간동안 내 아이들을 키워내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올바른 성인으로 독립시키려면  나는 반드시 건강하게 회복되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요양병원을 예약했다




내가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 기준은 

1. 갑상선 암 전문 요양병원일 것

2. 친정과 가까워서 친정식구들의 방문이 편할 것 (요양하는 동안 부산에 두고 온 아이들이 너무나 걱정될 것인데 친정식구들의 응원마저 없었으면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3. 요양병원 자체 프로그램 외에도 암 수술 후 우울증이나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산책코스 같은 환경조성이 되어 있을 것

4. 암 수술후 회복을 위한 면역력 증강 프로그램중에 고가의 항산화 치료를 받으라는 강요가 없을것.

요양병원은 대부분 비급여 치료를 하지만 실손보험으로 적용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손보험이 적용되는지를 미리 문의한 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내가 예약한 곳은 자연샘요양병원으로 내가 정한 기준에 다 부합했다.

특히 이 요양병원 바로 근처에 도보로 방문가능한 서울식물원이 있는데 하루에 한 번 이곳을 산책하는 시간은 그 어떤 치료보다 효과적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첫날 아직 수술과 마취에서 회복이 안되서 온몸에는 통증이 있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불면증도 있었다. 입원기간 동안 변비도 심해져서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다. 갑상선 호르몬이 아직 불균형한 상태로 심한 두통, 체온조절 기능 저하 같은 증상은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였지만 여러 가지 증상에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수술을 하러 오기전에 집을 줄여서 남편의 부채를 마지막으로 해결해 주려고 집을 내놓고 돈을 구해서 해결해주고 오려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저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서 아프고 잠못들고 약해져있었다. 

그런데 요양병원 원장은 두통은 아마도 카페인 금단증상일 것이다. 커피를 끊느라 반동두통이 나타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억지로 끊지 말고 병원 밑에 카페에서 한잔정도는 사마시라는 처방을 내려줬고 불면증은 오후에 커피를 안마시고 오전에 한잔만 마시면 해결될거라 했다. 그리고 낮에 한시간 산책하면 불면증도 변비도 해결될 것이니 하루 한번 식물원을 산책하라는 처방을 내려줬다.

사실 요양병원은  엘지 사이언스 본사가 있고 직주 근접지역으로 유명한 마곡지구에 위치해 있어서 유명한 카페나 베이커리들이 즐비했고 맛집도 많아서 산책하고 맛있는 커피 한잔을 하기에는 최적화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페탐방 끝에 정착한 번트 커피. 마곡의 카페들은 곳곳에 숨은 공원들을 조망하며 캠핑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나는 즐겁게 원장의 처방을 받아서 하루 한번 서울 식물원을 탐방하고 많은 카페들 중에 라테맛이 젤 좋은 곳을 찾아서 정착하며 일주일을 마치 새로운 도시에 일주일 살기를 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지냈었다.

요양병원에서 일주일은 남이 해주는 밥 먹고, 면역력과 회복에 좋은 미슬토나 셀레늄 치료들을 받고, 아름다운 식물원을 둘러보고 잘 정돈된 오피스 지구인 도시 곳곳에 숨은 맛집과 카페들을 탐방하다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타인이 정돈해 준 푹신한 침구에서 잠드는 일상을 살다 보니 금방 지나갔다.

베이커리 룬 에그타르르를 사서 식물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나는 요양이 아닌 여행을 온 것 같다. 타르트는 너무 달콤하고 고소했고 꽃향기 실린 봄바람은 따스했다.

정말로 이렇게 살고 싶다 하고 평생을 원했던 편안하고 조용하고 충만한 일주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일상이 뭔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아이 둘을 키우며 남편의 뒷수습을 하며 지독한 시모의 가스라이팅을 이겨내며 워킹맘으로 이십여 년을 그냥 남들을 위해 키우거나 돌보거나 나를 착취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느라 너무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잘못된 인연인지도 모르고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느라 나를 소진하며 관계를 유지하는데 급급하여 병들어가면서.





암에 걸리면서 어느 순간 인생의 방향을 틀어주는 바람이 불어 내 등을 떠밀어 주는 듯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일주일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정말로 편안하고 행복하고 충만했던 일주일. 암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갖게 된 소중한 시간. 사십여년을 살면서 한번도 이렇게 자신만에게 집중하며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오늘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오늘은 어디를 가보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그걸 실행한적이 없다는걸 알자 이렇게 보낸 일주일이 너무나 행복했다. 학창시절엔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업해선 한시도 쉬지 않고 돈을 벌었고 결혼하고 아이둘을 키우며 맞벌이해서 집한칸 마련해서 그걸 수시로 빼먹고 싶어하는 남편에게서 집을 지켜내느라 열심히 사는동안시간동안 한순간도 오직 내가 먹고 싶은것 내가 하고 싶은것만을 생각하며 지갑을 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사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누군가의 뒤를 봐주며 해결해 주는 삶을 사는 것도 전부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렇게 해야지만 가정이 유지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제일 먼저 앞에 둘 것이다. 나를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가정이라면, 나를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일상이라면 그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코끼리 만두집 김치만두는 과연 소문만큼 칼칼하고 맛있었다.



아마도 이 일주일의 경험은 나를 살릴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그동안 나는 고기 맛을 몰랐던 것이지 고기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릭요거트 맛집을 찾아가 식사대신 그릭요거트를 먹은날.      변비를 치료해준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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