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스페인-바로셀로나

사연 없는 도시는 없다. 바르셀로나 카탈루나인의 자부심

by 언젠가

바르셀로나 인 로마 아웃으로 여행 일정을 짠 건 성당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와 정치와 경제 예술과 건축이 모두 반영된 건 유럽 가톨릭의 역사이기도 하고 그 백미는 성당이다. 세계사를 배울 때 늘 유럽의 왕가가 교왕의 싸움이 주축이 되었고 왕가의 흥망성쇠는 종교의 흥망성쇠와 일치한다. 근대 이후 종교가 더 이상 의미 없어지고 왕권도 의미 없어졌지만 성당은 남았다.


나는 유럽 가톨릭 문화의 정점인 바티칸 대성당도 궁금했지만 근대 이후 왕권의 후원도 아니고 기업의 후원도 아닌 일반 시민들의 헌금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간다는 성가족 성당도 궁금했다.


성가족 성당의 그 역사는 사실 바르셀로나 도시의 역사와 시민 의식과도 닿아있다. 바르셀로나 구 도심 투어를 신청했다. 자신을 스페인 사람이 아닌 카탈루니아 사람이라 소개한 가이드는 지속적으로 카탈루니아 지방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성가족 성당도 그렇고 FC 바르셀로나 구단도 그렇고 이곳들은 모두 스페인 왕가나 기업들의 후원과는 상관없는 오직 일반 시민들의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그것이 이 도시의 자랑이고 상징이다.

중세시대에는 절대왕권, 근대화 이후는 대기업의 자본 이것만큼 강력한 게 있을까?

그런데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것보다는 스스로의 힘과 민주적인 권력 분배를 더 소중히 여긴다.

또한 여성인권을 지지하는 정당이 승리하는 도시이고 평화와 반전의 대표 예술가 피카소의 주요 활동 도시였다.

이거 이거 들을수록 너무 내 서타일 아닌가?

스페인의 카탈루니아 지방은 오래전부터 분리 독립을 추진했다 한다. 왕가의 영향도 더 많이 받고 더 부자인 저 위쪽 지방인 마드리드와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고나 할까? 이 카탈루니아 출신인 가이드에게 왜 분리 독립을 추진했냐? 하고 물으니 카탈루니아는 다르기 때문이란다. 뭐가 달라요? 하니 한국이 대구와 광주가 다른 것 것과 비슷하다고 예시를 들어주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가우디 투어를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왔지만 더 깊은 도시의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현지 가이드 투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마이리얼 트립에서 반나절 워킹 투어를 신청했는데 에두라는 이 가이드가 굉장했다.

카탈루니아 남자가 우리나라 전북대로 유학을 와서 한국여성을 만나서 결혼했고 본디아 투어라는 현지 투어회사를 차려 한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부부가 운영한다고 했다. 한국의 역사도 스페인의 역사도 이해가 깊었고 이 도시를 정말 하나하나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카탈루니아 광장에서 만나서 보케리아 시장, 고딕지구와 보른지구를 걷고 타파스 바에서 먹고 마시며 마무리하는 4시간짜리 코스 여행동안 이 도시 구석구석 이야기를 들었다.

1. 로마 무덤터:

바르셀로나는 역사가 깊은 도시이지만 지금의 람블라스 거리나 카탈루니아 거리 같은 곳은 계획해서 만든 신도시?인데 이곳을 건설할 때 로마시대 유적이 계속 나와서 그곳은 일단 공사하다 덮고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2000년이 넘는 유적들이 계속 발견되는 신도시라.... 재미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와우! 이런 오버투어리즘에 몸살을 앓는 대도시 한복판에, 이거 이거 금싸라기땅에 땅값만 해도 얼마인데, 여기에 뭐라도 하나 지으면 될 건데 어휴 안타깝다 하는 나는 역시 한국사람.

관광지 한복판에 이런 아직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시대 추정만 되는 유적터라도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 그들의 스케일과 여유가 부럽다.


2. 보케리아 시장 입구의 올리브 가게:

우리나라 시장 김치 가게라고 생각하면 같은 느낌일까? 스페인 올리브들은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이렇게 염장해 놓은걸 통조림에 담아서 반찬처럼 먹어도 맛있다. 싸고 품질이 좋아 보여서 사갈까 하다가 투어 중간에 짐을 늘리기 싫어서 포기했는데 지금도 후회된다.











보케리아 시장을 돌 때 가이드가 계속 소매치기 조심 하고 외쳐줬다. 나는 사실 반쯤 정신을 빼놓고 구경하다가 가이드의 따끔한 외침에 정신을 차리곤 했다. 올리브는 못 사도 싸고 맛있는 과일과 채소는 사고 싶었다. 체리랑 오렌지 섞어서 1kg을 단돈 2유로에 구입해서 투어 하면서 냠냠 먹었다.




3. 구시가지 어느 골목 핀초바:

이쑤시개에 찍어서 한입거리로 먹는 간식인 핀초와 타파스 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요리가 작은 접시에 조금씩 담겨 나온다)가 투어에 하나씩 포함되었는데 가이드가 골목 구석구석 안내 하다가 데려간 곳에서 이것저것 골라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와인이나 레몬 맥주 중 선택해도 되고 와인을 못 먹는 아이들은 오렌지 주스를 선택해도 된다.

우리 가이드는 이 도시를 사랑하고 피카소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어서 피카소가 첫 작품을 판 화랑도 안내해 줬고 그의 작품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다 고맙고 즐거웠지만 사실 제일 고마운 순간은 이 순간이었다.




4. 카탈루니아 음악당 골목:

이 골목을 지나면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나오고 널따란 광장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유치원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2차 대전 때 포탄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회당에 폭격을 피해 시민들이 숨어들었는데 어른들을 대부분 희생당하고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감싸서 지켜냈다고 한다.

마침 유치원이 끝나고 아이들이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유년기 아이 둘을 키우는 에두 가이드가 스페인은 돌봄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유년기 아이 둘 키우는 게 그다지 경제적으로 힘든 건 아니라고 했다.

애들 손을 잡고 여행을 온 나는 이 부분이 매우 부러웠다. 지금은 학령기 청소년기 아이들인 이 아이들을 키울 때 제일 힘들던 시절은 돌봄시절인 유치원기였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국립으로 운영되고 예체능 과목들은 적은 금액을 추가하면 되는 방과 후 공교육 개념으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 그 말이 어찌나 부럽던지. 애들 유치원-초등 저학년 시절 태권도 피아노 영어 바이올린 학원을 돌아야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이 돼서 애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번 돈은 전부 애들 학원 뺑뺑이에 투자하던 그 시절을 거쳐 이제는 큰애가 청소년기에 들어왔는데 이젠 정말 대입을 위해 사교육비에 화력을 쏟아야 한다. 애 낳고 와도 내 책상 안 빼버린 직장에 감사하며 힘들게 맞벌이를 해도 아이의 안전과 아이의 입시를 돈으로 사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며 애들은 컸다. 내 애들은 아침에 나가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다가 해지고 나서야 집에 꼬질꼬질하게 지쳐서 돌아올 수 있었다. 수족구 유행하면 수족구 걸리고 독감 유행하면 독감 걸리고 뭐 그때마다 나는 또 연차를 어떻게 써야 하나 눈치 보고 그렇게 그렇게 어찌저찌 크긴 컸다. 뭐 이틀에 한번 원격수업으로 전환돼서 학교 못 가는 동안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가 집에서 혼자 어떻게 원격수업을 하지? 밥은 어쩌지? 매일 걱정이던 코로나 시절도 지나왔다. 매일 피 말리며 걱정하고 어찌어찌 키워낸, 우주와도 바꿀 수만큼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이제는 그 애들과 손을 잡고 이렇게 멀리 구라파 여행도 온다.

스페인의 출산율, 우리나라보다 높다.

5. 카탈루니아 분수 font de canaletes

람블라스 거리 입구의 아주 쪼끄만 분수대로 말 안 해주면 지나쳐 버릴 곳이다. 이곳은 사실 카탈루니아 인들의 회합의 장소였고 그들의 자부심의 상징 같은 곳이란다. 중요한 경기가 열리면 시민들은 이곳에 쏟아져 나와 응원했다고 한다. 가이드 말이 2002년 광화문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니 또 쏙 이해가 간다. 이 분수의 물을 먹으면 또 바르셀로나에서 살아볼 기회가 온다고 하니 아리수보다 못한 물맛이라도 참고 먹었다.







마이리얼 트립 에두와 함께 하는 타파스 시내 투어 링크 걸어 둡니다. 혹시라도 반나절 워킹 투어를 계획하시는 분은 에두 가이드와 함께 하시길!

https://www.myrealtrip.com/offers/122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