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나 사람들이 가우디를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이유
성가족 성당을 눈으로 본 느낌은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내가 표현하는 언어가 비루해 질만큼 압도적이다. 말로 어떤 설명을 해도 이걸 담기는 힘들다.
왜 수십만 명이 이것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오는지 알겠다.
가우디 투어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다. 우리 숙소가 가우디의 작품들이 주로 포진한 그라시아 거리 (우리나라 청담동처럼 고급진 부자동네. 우리 숙소가 있는 람블라스 거리 입구랑 또 느낌이 틀린 곳)와 가까워서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게 덜 힘들긴 했지만 여행 3일 차. 아직 시차 적응은 덜된 상태이고 큰아이는 장염과 독감으로 뻗여 있을 때여서 오늘 투어가 걱정이 되긴 했다.
그라시아 거리의 까사 바트요, 까사밀라를 보고 구엘 공원을 들렀다 택시를 타고 성가족 성당으로 향한다.
감동과 놀라움의 순서도 이것과 비례한다. 까사 바트요를 보고 우와~~~ 까사 밀라를 보고 우와와!!!!!!! 그리고 구엘공원에 가서 가우디, 대단한데 대단해 우와와와와@@ 띠용~~~ 하다가 성가족 성당을 보면 그냥 말이 턱 막히고 입이 떡 벌어지며 그야말로 압도된다.
1. 구엘공원에서 전망한 시가지
구엘 공원은 시가지와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 타운 하우스 목적으로 이 공원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미분양 사태 속출했다고 한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뷰가 나오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당시 부자들도 부동산의 최고 조건은 입지라고 생각했나 보다. 역세권도 슬세권도 아닌 이곳은 그 당시에는 외면당했다.
2. 성가족 성당의 내부
성가족 성당의 외부의 조각상과 탑들의 의미를 알고 조망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내부에 입장해서 둘러보는데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내부는 그저 빛.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투과하는 빛은 시시각각 색이 변한다. 파이프오르간이 울려 퍼지는 성당 안에서 잠깐 기도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가우디는 천재이자 신실한 신자였다. 그 당시에 파격적인 건축물들을 선보이고 집을 지어 분양하며 구매자의 자본에 의해 살다가, 구엘공원이 외면당하고 성가족 성당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천재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천재를 이해 못 하는 대중에 의해 호 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사후에 재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천재들의 작품은 남아서 후손들을 먹여 살려줄 원동력이 된다. 말년에는 평생을 홀로 살며 이 성당에 모든 것을 바치고 집착에 가까울 만큼 디테일을 중요시 여겨 성당 외관의 조각상에 들어갈 아기의 부조를 뜰 때는 실제 아이 시신을 가져다 부조를 뜨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의 죽음은 얼마나 쓸쓸했던지, 전차에 치이고 나서도 행색이 너무 초라해 노숙자로 여겨져 적시에 치료받지 못하고 죽었다.
평범한 범인인 우리들은 그를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집착에 가까운 노력들이 남긴 작품을 보면 머리로는 이해 못 해도 가슴으로 울림이 전해진다. 막눈인 사람이 봐도 압도될만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 뒤에 밀려드는 숙연함과 감동. 카탈루니아 인들은 로마 가톨릭(바티칸)에 가우디를 성인으로 추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님처럼 신앙을 전파하다가 순교했거나 신앙의 모범이 된 사람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주는데 가우디는 순교는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들로 인해 오랫동안 냉담했던 나 같은 사람도 다시 영성의 품으로 이끌어 주는 거 보면 성인이 될 자격이 있다. 바티칸의 승인이 있기를 나도 기도한다.
3. 주기도문 벽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성당 외부의 조각들과 탑은 신약과 구약 성서의 내용들을 아우르며 구성되어 있고 내부는 기도문의 벽이 있다. 그중 주 기도문이 조각된 벽이 있는데 주 기도문이 각 나라 언어로 한 줄씩 적혀있다.
한글로 적힌 부분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구절이다.
유럽 가톨릭의 역사는 사실 권력과 약탈의 역사와도 닿아있다. 특히 스페인 왕권은 대 항해 시대에 식민지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로 아름다운 성당들을 지었다. 대표적인 게 세비야의 스페인 대성당이다. 아름답지만 늘 가슴이 아프다. 종교란 무엇일까? 유럽 역사를 배우며 아비뇽의 굴욕이라는 부분을 보면 교황청이 왕권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내용이다. 왕은 자신의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교황청과 손을 잡고 교황청은 왕으로부터 보호와 헌금을 받아왔다. 교황이 왕과 싸워서 진 게 왜? 그게 사실 일반인들의 삶과 맞닿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빠서 신의 섭리와 뜻을 탐구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 살아보니 산다는 게 쉽지 않고 가족이 생기고 애를 낳고 나면 더 더욱이나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게 내 힘과 의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아, 나는 이 우주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렇다면 결국엔 절대자인 신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인가? 를 느끼고 영성을 찾기 시작한다. 종교란, 신의 섭리란 딱 이만큼만 와닿는 것이다.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와 믿음이 구원이 되려면 현실과 닿는 지점에서 구원이 돼야 한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 역시 다시 먹고사는 일로 돌아간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더 이상도 안 바라고 내일 배 채울 양식까지 바리바리 창고에 채우지 않고 그냥 오늘 하루 필요한 양식이 주어진다면 신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가 내 힘으로 하루의 필요한 양식을 허락받을 수 있는 삶을 신께 청해 본다. 가톨릭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교리를 배워야 하고 첫 영성체 교리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이게 만만치가 않아서 의지와 함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영성체를 받게 해서 수녀님께 손바닥을 맞아가며 여러 기도문들을 외웠다. 아이였을 때라 기도문의 어려운 문구와 뜻도 모르고 그냥 외웠었다. 그런데 그중 주 기도문은 가장 쉽고 입에 착 붙어서 교리 시험을 볼 때 어렵지 않게 통과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 기도문이 지향하는 바는 어렴풋이 이해 갔다. 아무튼 내가 주 기도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데 그 구절이 한글로 적혀있는 걸 발견하자 또 눈물이 났다.
4. 성가정 성당은 계속된다.
유럽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이나 성당들을 짓기 위해서는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유럽에는 날고 기는 대단한 왕가들이 많아서 그들이 축척한 막대한 부로 많은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남아있고 앞으로도 인류가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유산이 되었다. 성가정 성당은 조금 다르다. 대기업이나 유럽 왕가의 기부금대신 시민들의 헌금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한다.
천재 건축가의 신실한 신앙과 옵세한 노력으로 시작된 이 성당은 지금도 전 세계 평신도의 헌금을 모아 첨탑을 올리고 있다. 옛날로 치면 귀족이나 대사제,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의 후원 없이 평신도들의 기도와 헌금으로 하나하나 지어가는 성당은 아름답고 장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