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피렌체

관대한 조상님 메디치 가문

by 언젠가

세비야에서 라이언 항공을 타고 로마로 넘어왔다. 라이언 항공 노선을 예약하기 위해 여러 블로그의 후기들을 읽어봤는데 역시 유럽 저가 항공사들답게 악명 높은 후기가 많았다. 그래도 싸니까 타야지! 우리가 넘어갈 때 이탈리아로 수학여행 같은 걸 가는 단체 학생들이랑 같이 탔는데, 중국인들만 시끄럽다고 누가 그랬냐? 단체 여행객은 다 시끄러워. 중국어 보다 스페인어가 더 따따따 시끄럽다.

로마에 베이스캠프를 틀고 이탈리아 고속열차인 이딸로를 타고 소도시들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그 첫 번째는 피렌체로 떼르미역에서 커피 한잔 사들고 한 시간 반 기차를 타고 가면 도착한다. 당일치기 피렌체 여행의 목적은 우피치 미술관 투어. 르네상스를 열었던 도시답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도시의 흥망성쇠의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돈놀이 잘하는 대단한 가문이 있었는데 이 가문의 귀한 컬랙션들을 모아 놓은 미술관을 돌아보고 싶었다.


1. 우피치미술관 대표주자 비너스의 탄생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준 여성 비너스

2.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페미니즘을 탄생시킨 여성 유디트











우피치에 가서 메디치 가문의 컬랙션들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입이 떡 벌어진다. 피렌체 시민들은 이렇게 안목 있게 예술품들을 사들이고 격조 있게 미술가들을 후원해서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하고 부유한 조상님이 있어서 좋겠다. 막대한 부를 축적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다가 종국에는 모든 재산을 피렌체 시에 환원해서 내 돈으로 피레네 산맥 아래쪽 모든 교육기관은 무상으로 운영하게 하라고 했었던 관대한 멋쟁이 조상님. 메디치 가문 귀족들. 이런 귀족은 환영합니다! 지금도 피렌체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피렌체 시 내에선 배우고 싶으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무상으로.


우피치 미술관에 가서 본 두 작품을 비교해 봤다. 사실 나는 젠틸레스키의 작품을 보러 왔다. 보티첼리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은 말을 안 해도 워낙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그림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회화는 신들을 표현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표현했었다. 르네상스에 와서야 사람으로 주체가 넘어왔는데 여성을 표현한다고 하면 저렇게 비너스처럼 신화적 표현이나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젠틸레스키 이 언니는 여성을 그렸고 게다가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닌 남성의 목을 써는 모습으로 그렸다. 강렬하고 폭력적이고 생생하게. 유디트의 어깨와 팔과 근육을 생생하고 강하게 표현했고 이 그림은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여성들이 나도 주체가 될 수 있구나, 나도 힘이 있는 존재 였구나! 를 자각하게 하여 페미니즘의 열게 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였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의 죗값을 물어야 하는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증하라며 2차, 3차 가해를 했던걸 걸 감내해야 했다. 어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지겨워 ~ 하고 화를 낼일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녀는 꺽이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리며 자신의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켜 많은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자각하게 할 수 있는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젠틸레스키 언니.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걸 이겨내주셔서 ,그리고 계속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3. 알베르토 여기서 뭐 하세요?

토스카나는 목축과 와인으로 유명한 지방이고 토스카나 그 지방의 주도인 피렌체에도 역시 맛있는 스테이크집이 많으며 가죽 세공품들도 유명하다.

티본스테이크 먹으러 달오스테 Dall'oste라는 유명 맛집에 갔더니 한국어 메뉴에 알베르토가 딱!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서버가 있어서 주문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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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티본스테이크가 정말 크고 맛있어서 행복했다.

오시오 오시오 한국인들 스때끼 썰러 피렌체 달오스테오시오. 한국인들 정말 많았다. 토스카나 와인은 밀도와 풍미가 높고 향긋한데 2016년도 반피를 하프보틀로 시켰다. 원보틀 시킬걸 후회된다.




5. 여행 사진을 돌아보니 제일 행복해하는 모습이 피렌체에서 스테이크 먹으며 와인 마실 때였다.

Banfi brunello di motalcino , 반피는 산지오베제라는 토스카나 포도 품종 와인으로 당도와 바디 다 만족스럽고 스테이크랑 마시니까 있었는데 없어져 버릴 정도로 쓱 넘어갔다.


6. 산타마리아 노벨라 약국.

피렌체에 본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화려하고 엄청나게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산타마리아 노벨라 약국. 말이 약국이지 화장품 가게지만 400년 전부터 전해진 비밀 레시피로 제품을 만든다는 데다가 지도에도 Officina Profumo-

Famaceutica di santa maria novella 산타마리아 노벨라 약국.이라고 정식 표기되었으니 약국이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끝판왕. 도시 전체가 꽃과 같이 화려하고 정말로 꽃과 같은 문화를 피워냈던 곳. 미술관은 물론이거니와 건물도 약국도 아름답고 식당의 고기도 빵도 아름답고 그냥 다 아름답고 부러운 곳.

조금 부자인 이웃을 만나면 앗 저 사람 쫌 사나 보네? 싶지만 대대로 그냥 압도적인 부자인 데다가 그 부유함의 기품이 몸에 익은 이웃을 만나면 쳇 저 사람 돈 좀 있나 보네? 가 아니라 저절로 우와 부내가 저절로 느껴진다. 부내가 저절로 느껴지는데 억지로 돈 티 내는 느낌이 아닌 진짜 올드머니 느낌의 도시가 이곳 피렌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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