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가 1유로? 싸다 싸!
세비야로 넘어오니 바르셀로나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메트로 폴 파라솔에 올라가 별빛 아래 반짝이는 대성당 종탑을 바라보는데 이런 세상을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할 만큼 아름다웠다.
메트로 폴 파라솔 입장료는 입장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단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세트 요금이 가장 싸다. (파밀리아 프로모션) 아이가 있으면 디스카운트해준다는 패밀리 프로모션이라는 이 제도는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며 이탈리아 고속철 이딸로를 예약할 때도 써먹었다. 유럽의 어느나라를 가든지 친 육아 정책이 보인다. 아기 키우는 가족 우대! 출산율 장려가 나라의 과제인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
스페인에 온 지 고작 5일 되었지만 현지 투어 가이드들과 이야기해 보고 몇 가지 포인트에서 느낀 점은, 이 나라는 애 낳고 키우기 나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애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내가 애를 낳아 키워보니 점점 더 간절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완성돼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자꾸 우리나라 청년들한테 결혼 안 한고 애 안 낳으려고 한다고 이기적이라고 한다. 청년들에게 당연한 욕심을 버리게 한 현실을 만든 사람들이 이 현실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는 정말 애 키우기 너무너무 힘들다.
아! 밝히자면 나는 여성주의자다. 살면서 어떤 주의를 가져본 적 없다. 사실 어떤 사상에 심취하기엔 먹고살기도 너무 바쁘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80년대에 태어난 둘째 딸 (내 이름을 내 이름으로 지은건 순전히 할머니가 그래야 다음엔 아들 낳는다고 주장해서)로 커나갔고, 20년 직장생활을 하며 그중 10년은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결혼해서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이 너는 내 며느리이기 때문에 너의 권리는 나에게 귀속된다라고 당연시 여기는 시어머니에게 늘 영역을 침범당하며 애 낳고 살아가며
"와우야!! 이거 이거 너무너무 불합리한데? "를 저절로 입에 달고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여성의 연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건 꼭 직장에서 일을하고 결혼을해서 시집살이를 겪지 않아도 어느 시점에든지 위기에 몰릴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연애를 하다가 안전이별을 걱정해야하기도 하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묻지마 살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아름답고 반짝 반짝 빛나던 여성 이였던 구하라씨나 설리씨가 결국엔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사랑하고 연애를 한 것, 브라를 안 한것이 이렇게 이들을 표적삼아 조롱하고 괴롭힐 만한 일이였나 싶어서 너무 슬펐다. 저들이 내 동생이였으면 꼭 앉아 감싸주고 술 마시고 싶다할때 술 사주고 더 많이 반짝반짝 거리며 살자고 했을껀데 싶어서 참 슬펐다.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나보다 먼저 사회에 나온 선배들 (지금의 50대 이상)은 양성 평등과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에 무지했다. 보고 배울 모델이 전무했다. 학창 시절에 페미니즘 도서라고 분류되었던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를 썼던 여성작가는 오히려 본인이 테러리스트 같은 행보를 보인다. 나는 페미니즘이란 그동안 관심 못 가졌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외와 차별당했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연대라고 여긴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걸까? 그들도 분명 출산과 육아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게 힘들 건데 연대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기간제 교사로 첫 근무를 하던 학교에서 부장이 노래방 회식에 부르스를 추자고 했을 때 싫다고 했던 나를 부추기며 괜찮으니 분위기 깨지 말고 한번 춤추라 했던 사람이 선배 여교사였다. 남학생들이 발등에 거울을 붙이고 다니며 스커트 속을 보는걸 적발하고 그반 담임 교사였던 선생에게 처벌을 부탁했더니 아이고 선생님이 이뻐서 그런다, 나 젊을 때는 더했다. 나는 이제 늙어서 아무도 안봐 준다. 하고 웃어넘기던 사람 본인도 여성이었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어서? 아니. 우리는 그때 그게 당연하다 여겼던 것이다. 아무도 문제라도 못 느끼고 받아들이면 그게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그게 직장 상사라도 내 안전거리는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 회식 자리에서 하기 싫은 건 안해도 되는 권리, 아니 회식에 참여하기 싫으면 억지로 참여하지 않을 권리. 그때는 내가 비정규직이여서 더 만만하게 보여서 그랬다 하고 어렵게 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기본적인 매너가 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그때는 일어났다. 상대에게 존중을 바라는 매너를 요구하는 내가 오히려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어휴 지겨워~ 그래도 그렇게 예민하게 살길 잘했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고, 무엇보다 만약 지금 내 직장에서 내 후배 여교사들이 이런일을 당한다고 하면 함께 싸워주고 바꿔나갈 힘과 용기가 생겼다.
일상에서 여성 친화적인 것.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생각조차 못해왔다. 예를 들면 이런 포인트이다.
여행을 하다 생리가 시작돼서 까르푸에 갔는데 생리대가 30개입에 1.89유로 정도였다. 이천 원대.
생리대는 필수품이다. 모든 여성이 인생의 절반 이상의 기간동안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생리대는 너무 비싸다. 30개입이 이 가격에 3배 이상 가격이다. 가끔 저소득 여성 생리대 지원 사업 신청 공문을 접수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사업을 선별 복지랍시고 하지 말고 차라리 이걸 필수공공재의 개념으로 만들어 판매 가격자체를 싸게 만들어 모든 여성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게 할 생각은 못하는 것일까? 답답할 때가 많다.
언니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 등에서 시행하는 생리대 지원사업은 사실 지원 대상자를 선별하는 것 자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 대신 사용하는 소녀를 돕자 이런 구호로 후원금을 모집하는 것보다 이게 쌀과 같은 필수품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돈이 없어서 못사는 사람을 돕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인간의 일생에 꼭 필요한 필수제는 세금으로 보존해줘서 원가 구매가 가능하게 하는게 좋을것 같다. 생리대 못사는 소녀를 돕는다고 생리대 못사는 소녀들 알아내서 보고해라 라는 공문 자체가 이상한것 아닌가? 이것이 여성을 위한 선별복지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라지게 되면 좋겠다.
세비야 산타크루즈 구 도심에서 2일을 보내고 외각의 소도시도 둘러보기로 했다. 론다를 가며 가는 길에 사하라(ZAHARA)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둘러보았다. 사하라 마을은 우리라나로 치면 경상북도 어떤 농촌 마을의 한 동리 정도 되는 개념으로 보면 되겠다.
우리를 안내했던 투어가이드는 대학생 때 세비야로 유학을 와서 이곳에서 스페인 여성과 만나 자리를 잡은 청년이었다. 한국 청년과 스페인 여성이 함께 가이드가 돼서 투어를 진행했다. 이 나라는 동거인 상태라도 법적배우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동거인 자격 영주권을 딸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은 아직 안 했지만 출산은 준비 중이며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청년 가이드의 말이 스페인도 청년 실업률도 높고 누구나 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 하지만 사실 스페인에서는 누구나 무슨 일이든 일을 하면 살 수는 있다고 한다. 고용안정도가 공무원보다 덜한 직종이더라도 ,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월급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고, 이렇게 청년시절을 보내고 나면 노후는 지금까지 낸 세금으로 어느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다고.
물가와 인건비는 높아도 생활물가는 싸기에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동안 사교육비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젊은 시절 일해서 낸 세금으로 올드푸어족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금에 대한 믿음. 부럽다. 나라가 국민에게 이런 믿음을 준다면 열심히 일해서 현생을 살며 애를 낳아서 키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지금의 시점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걱정되는 건 이렇게 사교육에 많은 부분을 쏟다가 내 노후 준비는 언제 하지? 이다.
연금으로 커버 안 되는 노후의 생활비를 위해서 또 부동산 투자를 공부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돈도 잘 벌고 투자도 잘하고 뛰어난 개인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 부를 축적한 뛰어난 개인들은 사회제도 자체가 평범한 다수를 위해 움직이는 건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막대한 부를 축척한 뛰어난 개인들이 재단을 통해 결국엔 사회 다수를 위해 환원하게 자연스러운 미국과도 다르고 조상님으로 물려받은 문화 유산과 부를 통해 기본적인 복지제도를 구축해 놓은 유럽과도 다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성장을 시작한 역사도 짧고 분배를 고민할 만큼 부를 축척한 역사도 짧으니. 하지만 그래도 낮은 출산율을 보면 우리는 모두 미래의 재생산과 이를 위한 공공의 자원의 분배를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지금도 늦다. 이렇게 애를 안 낳았다가는 다 망한다. 애를 낳게 하려면 애 낳는 사람(여성)입장에서 고민하고 정책을 세워야 한다. 여성주의는 결국 배척하고 혐오해야 할 사상이 아니라 반드시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 한국 청년가이드도 한 번씩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잃은 것처럼 아쉬워하며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데 하며 자신이 영주권을 획득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이제라도 귀국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한다. 저절로 "가이드님 여기서 이렇게 자리 잡고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데 아버지가 아쉬워한다고 이룬 거 버리고 돌아가지 마세요" 라는 말이 나왔다. 여행 와서도 오지랖과 주책을 떠는 건 어쩔 수 없다.
론다 가는 길에 들렀던 작은 호수 마을 사하라.(ZAHARA)
"이 작은 농촌마을이 소멸위험은 없나요?" 하고 물어보자 청년 가이드가 쿨한 대답을 내놨다.
이 마을의 기본소득은 대도시보다 작지만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에요. 출산율도 대도시보다 높은데요?
동화 속 같은 어느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만족스럽게 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마을에는 없다. 우리나라 시골은 내일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람이 없다. 씁쓸하고 부럽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어제까지 있던 카탈루니아 지방과는 기후도 식생도 또 다르다. 세비야에 있는 동안 계속 날씨가 좋고 따스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오렌지 나무는 봤지만 세비야는 모든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다. 떨어진 오렌지는 말들이 주워 먹도록 두고 주워 먹고 남은 건 시에서 수거해서 친환경 연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아름답고 따스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가로수에서 친환경 연료를 얻어내고 여성이 편리하고 애들이 행복한 곳.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 그렇지만 나는 한국에서 현생을 살고 있으니 돌아가면 내가 사는 동안은 한국도 여성이 편리하고 애들이 행복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를 환경을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더 가열차게 노력하고 달려봐야지! 언젠가는 우리의 딸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