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로마

피에타- 자식을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by 언젠가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광화문 광장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의 한분이었던 평신도에게 직접 세례를 주며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아픔을 끌어안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시며 큰 울림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자식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 그 죽음들을 납득이 가도록 규명하고 조사해 달라는 요청이 정쟁에 이용되고, 조롱을 받으며 외면받던 부모들에게는 그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지 상상도 못 하겠다. 바티칸 미술관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하여 제대로 투어를 하려면 하루를 잡아야 하고 미술사를 전공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투어 예약을 했다.

미술사 전공 가이드가 많은 해설을 해주고 감상의 방향을 안내해 줬지만 성당 안에서 마주한 피에타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마주하는 즉시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과 고통이 전달돼서 눈물이 그냥 저절로 흐른다.


자식을 키워보면 안다. 인재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게 구는지 경험한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어떤 부채감에 시달린다. 세월호가 그렇고 이태원이 그랬다. 군대 보낼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채상병의 죽음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다. 권력 앞에서는 자식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부모들을 보면서도 목소리를 높여줄 수 없다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 내가 낸 목소리가 다르게 해석되어 혹여나 저들의 슬픔에 누가 될까 봐 걱정스러운 것. 우주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존재. 그 존재를 잃고 절망하는 부모를 위해 종교가 대신 울어주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어준다면 그 종교는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방한하셨던 프란체스코 교황님께 참으로 감사했었다. 그리고 피에타 앞에서 잠시 자식 잃은 모든 부모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었다.


1. 바티칸 투어는 미술관 투어와 대성당 투어로 이루어진다. 라파엘로의 방에 들어오면 아테나 학당 앞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찾아 인증숏을 찍어야 한다.













2. 시스티나 소성당에 가면 바티칸 미술관의 가장 큰 보물인 천지창조 천장화를 볼 수 있는데 그곳은 촬영금지 대화금지인 곳이고 그곳을 들어가는 입구 지도의 방 천장화는 촬영이 허락돼서 찍었다.

1600년대의 독일 지리학자가 만든 이탈리아의 지도를 천장화로 표현한 것.










3. 성베드로 성당의 천장

대성당의 규모와 소장품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고 압도적인데 미켈란젤로는 일부러 실제 사이즈보다 작아 보이게 설계했다고 한다. 크고 압도적인 이 성당에 사람이 압도되지 않도록.

본질은 성당 건물 자체가 아닌 하느님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신실한 예술가의 큰 그림이다.


4. 성베드로 성당 제대와 천 개

교황님이 미사를 집전하면 이 성당 내부에 삼만 명이 운집한다고 한다.













5. 베드로 광장의 분수와 오벨리스크


아침에 들어가 미술관과 대성당을 돌아보고 나오니 깜깜해졌다.

엄마 손을 잡고 열심히 따라다니던 아들들도 허기진다고 밥 먹자고 조른다.

사춘기 아들과 학령기 아들을 키우면서 때로는 힘들다 지친다 투덜거렸다. 그런데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 보니 아이들이 나의 지평을 열어주고 내 삶을 완성해 주는 존재라는걸 또 느끼게 된다. 특히 아이들과 유럽에 와서 종교의 느낌이 가장 강한 성당들을 둘러보니 이 애들은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고 이 애들을 제대로 키워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게 신이 나에게 주신 나의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사춘기 큰아들이 엄마는 다른 엄마들만큼 사교육 정보 수집에 노력을 안 했고 자신을 미리 특목고 대비 학원에 보내며 대비시켜 주지 않아서 자신이 과학고 입시에 실패했다고 화살을 나에게 돌렸을 때는 항상 군인 머리반삭 커트를 유지하여 쥐 뜯을게 없는 큰아들 머리를 쥐어 뜯어버릴 만큼 화가 났었다. 큰아이의 아비투스가 저렇게 형성된 것은 세상탓이라며 사회탓이라며 나 역시 또 남탓을 했다.


그런데 그런 아들과 여행을 하며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것을 같이 바라보고 나니 특히 그 아이가 여행 도중에 아파서 앓기 시작하자 이렇게 애틋하고 소중할 수가 없다. 아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한번에 틀어줄 수 없지만 아이들의 아비투스를 바꿀 수 있는건 결국 부모의 아비투스 아닐까?

눈으로 대단한 것들을 담으면 그 대단한 것들을 지키고 기억하기 위해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것을 보고 나면 내가 가졌던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