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달리기

허벅지 근육만이 살길이다.

by 언젠가

결국엔 나 자신만 남는다.

결혼을 하고 지배적인 시부모와 갈등을 하며 마음이 지옥 같던 순간들도 있었다.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워 내는 동안은 전쟁 육아를 하며 하루하루를 허덕 허덕 거리면서 지내왔던 순간들도 있었다.

가정을 꾸리며 자식을 키우며 부모로 살아간다는 게 어리둥절했던 남편의 방황과 실패를 지켜보고 그가 다시 일상을 묵묵히 꾸준히 살아가도록 일으켜줬다. 사춘기 큰아이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고 이제는 다 커버린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본인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응원해 주고 길을 잃었을 때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품을 조금 내주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나니 마흔 줄에 다 달아서 내 인생엔 결국엔 다시 나 자신만 남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십 대에는 취업과 결혼 삼십 대에는 육아와 내 집마련 그리고 시집살이. 내 인생이지만 누군가와 얽히고설켜서 복잡스럽고 와글와글했던 그 길을 걸어오고 보니 어느덧 마흔 줄에 이르렀고, 아이는 크고 어른은 돌아가시고 나는 또 나를 직시하게 된다.


그러면 , 어차피 내 인생은 결국 나로 시작된 나로 끝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딸, 엄마, 며느리, 부인으로 살았지만 이제부터 그 역할을 다 완수했으니 정말 진정한 나로만 살아가기 위해 진짜로 필요한 게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근육과 연금. 그리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줄 쓰기와 읽기.


그렇다. 마흔이 넘어가니 더욱더 운동과 읽기 쓰기가 실존을 넘어 생존과 연결된다.

긴 인생, 동반자와 함께 일 때도 있지만 결국엔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고 책임져야 한다. 나의 존재의 실존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에 근육이 있어야 한다. 뛰기만큼 혼자 하기 적절하면서도 허벅지 근육을 만들어 줄 좋은 운동이 있을까? 장벽도 낮고 일단 필요한 건 운동화 한켤래, 그리고 무조건 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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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을 진심으로 하려고 마음먹고 나서 러닝크루 소모임에 나가 보기로 했다. 20,30대가 주축이 된 러닝 소모임에 겁 없이 6분대 코스에 들어가서 딱 한번 뛰고 난 후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다.

그 후로 런데이 러닝 초보 코스 앱을 깔고 8주 동안 꾸준히 뛰어본 후 인터벌 없이 30분간 지속 달리기에 도전해 본다. 퇴근 후 애들 저녁 챙겨 먹이고 둘째 숙제 봐주고 나면 밤이 돼야만 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뛰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갈등도 없다. 내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 내 숨소리만이 나를 지켜준다. 그것만 한 자각과 위안이 없다. 아름다운 강가의 밤풍경들도 지나가고,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렇지만 뛰는 동안 심장은 더 튼튼해지고 근육은 착실히 내 몸에 붙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이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또 내 인생이지만 내 잘못이 아닌 걸로 고통받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은 정직하고 묵묵하다. 기록도 그대로 정직하고 묵묵하다.

뛰기와 기록하기. 사십이 넘어서며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인데 그 깨달음이 참 쓰고 허무하다 하는 순간을 겪으면 뛰기와 기록하기로 또 일상을 붙잡고 나를 튼튼하게 만들며 나아가보자. 원래 인생은 그런 거 아니겠나 하며 체념하며 살아가는 게 기본값이라도 무언가를 붙잡아야 하는 게 인간의 욕망. 나는 사십 대가 되어서는 근육과 기록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