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요가

더럽게 힘들지만 나는 아는 기쁨

by 언젠가

요가를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수련의 의미를 붙인 건 마흔 줄에 들어와서였다.

그 이전엔 사실 운동을 진지하게 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고 항상 순위에서 밀렸다.

그러나 젊음이 주는 기운이 사라지고 남은 몸뚱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운동은 필수, 시간과 에너지가 없고 더 중요한 일의 순위에서 밀린다면 그 순위를 올려서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가 수련이라고 하면 우리는 단편적인 동작들을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요기니들이 펼치는 고무고무 몸이 돼야 할 것 같은 기기괴괴하고 포즈의 향연. 그런데 요가를 진지하게 수련의 개념으로 시작해 보니 요가의 세계는 단순히 동작이 아니라 너무나 크고 방대하고 평생 이 세계에 빠져서 수련을 해도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유연성을 기르고 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과 러닝 하며 심폐지구력과 근력을 기르기 위한 나름의 운동 계획을 짠 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구나 살려면 운동해야지를 경험하고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하려고 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내가 다니던 요가원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나는 주로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이 좋았었다. 하타요가, 플라잉요가, 빈야사요가, 싱잉볼 세러피월 요가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다 수련하지는 못하고 빈야사 요가와 플라잉 요가는 경험해 봤다. 싱잉볼 요가는 내가 다니던 요가원에서 처음 경험해 본 프로그램인데 요가 플로우의 마지막에 깊고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싱잉볼 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명상의 단계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우주에서 유영하는 기분이 들면서 깊고 깊은 명상에 빠질 수 있다. 이때 자세는 사바사나, 시체 자세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세로 수련 마지막에 편안하게 누워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 시간이 어찌나 편안하고 달콤한지 사바사나 자세를 취하며 깊은 명상? 혹은 짧고 깊은 수면에 도달하기도 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코코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요가를 수련해 온 결론은 더럽게 힘들고, 살이 쫙쫙 빠지는 건 아니지만 나만 아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빈야사 요가를 하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떤 흐름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수련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나는 근육량도 적고 유연성이 매우 부족하다. 햄스트링이 짧아 동작 자체의 모양이 선생님과 다른 어떤 버둥거림과 허우적 거림일 뿐이다. 그래도 수련을 마치고 나면 조금 더 느슨하고 가벼워진 어깨와 조금씩 정렬되거나 이완된 근육들이 주는 기분 좋은 나른함이 좋다.


나는 시르사아사나라는 거꾸로 서는 동작을 하기 위해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동작을 반복했지만 끝까지 이 동작은 완성하지 못했다.

KakaoTalk_20231020_144345665.jpg 시르사 아사나--물구나무서기


왜 그런가 나를 바라보면 나는 일단 두려움이 많고 내 몸에 대한 이해나 받아들임이 아직 부족하다. 거꾸로 서는 동작을 할 때는 늘 뒤로 자빠지면 어쩌지? 이대로 구르면 어쩌지? 이 동작을 하다가 목이 꺾이면 어쩌지? 하는 수많은 두려움이 먼저 내 마음속에 물음표를 그린다. 요가동작은 가벼워야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몸이 가볍다는 게 아니고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마음속엔 오직 나와 내 몸만을 바라보고 다른 의문이 없어져야 한다.

내 몸은 삼 년째 시르사 아사나는 미완성이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고 계속 연습과 수련을 이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내 몸뚱이지만 어쩌겠는가? 내 몸인데?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나? 또 인생은 길고 나에게 남은 건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뿐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완성이 되더라도, 되지 않더라도 그 또한 과정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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