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등산

죽을 거 같아 그래도 좋아

by 언젠가

오랜만에 만나면 어디 가서 한잔할까 가 주요 의제였던 사십 대 여성 셋은 어느 날 우리 이렇게 술만 퍼마시고 놀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중 한 명, 소싯적엔 산좀 탔던 언니가 그럼 운동 삼아 봄가을에는 산을 타자고 제안한다.

나는 어디든 그 모임의 끝에 맥주나 소주가 나오면 좋고, 등산 끝에는 막걸리를 먹으면 되겠네 하고 따라나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그 등산 모임은 어느덧 날 좋은 가을날이 되면 화왕산에 올라 갈대를 봐야 해, 꽃 피는 봄이 오면 장산에 올라 꽃을 봐야 해 하며 아이들까지 어울리는 가족단위 야유회 처럼 되었다. 사실 애들을 데리고 등산하면 아이들이 날쌔고 가볍게 먼저 산을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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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화왕산은 갈대의 향연이다. 여러 코스 중에서 우리의 술에 쩌든 몸뚱이를 고려해 비교적 짧은 코스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짧은 코스일수록 정상에 오르는 경사도가 높아서 만만치 않았다.

가볍게 애들도 데리고 야유회처럼 왔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깔딱 고개에 도달하고 보니 약이 오르고 목도 탄다. 나를 낚은 산좀 타는 옆집언니를 째려보았자 그 언니도 지금 숨차고 힘들다. 저 언니가 호언장담하며 이렇게 몇 년 몸 만들면 우린 한겨울 한라산도 등반할 수 있다고 했는데 화왕산부터 정복해 보고 한라산을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

그래도 묵묵히 오르고 또 오르고 후들거리는 무릎을 달래주며 오르고 보니 정산에 오르긴 오른다. 갈대밭이 어찌나 장관인지 산을 오르며 흘린 피땀눈물이 아깝지 않았다.

등산을 처음 시작할 때 운동화를 신었는데 이 산좀 타는 언니가 왜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지 발목까지 보호되는 신발의 중요성을 설파해서 다음 등산에는 트레킹화를 준비했다. 가볍고 발목을 잡아주는 신발만큼 중요한 건 나 같은 초보 등산객의 중심을 잡아줄 스틱, 내 마실 물정도는 넣은 가벼운 배낭, 통풍이 잘되지만 가벼운 소재의 옷차림 정도일 것이겠지. 그리고 내려오면서 꼭 아주 낡고 더럽지만 아주 맛있는 국숫집이나 파전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셔야 하는 것. 그 보상을 위해 목이 조이고 다리가 떨려도 산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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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의 갈대도 단풍도 가을이 왔도다! 하고 말해준다. 니 인생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가을날들이 얼마나 있을 줄 아니? 그냥 빠져들어 즐겨라 임마!하고 말해준다.

맞다. 산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느끼고 싶으면 산에 가야 하고 바다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느끼고 싶으면 바다에 가야 한다. 사계절동안 나가서 놀기 완벽한 하늘과 날씨가 그리 많지 않다. 산을 오르면 숨이 턱턱 막히며 죽을 것 같고 내릴 땐 하체와 상체가 분리되는 것 같이 흐늘거려도 좋다.

마흔 줄에야 들어서 찾은 생의 이유와 여유. 아름다운 산을 타면서 또 현생이 주는 기쁨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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