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줄넘기

줄넘기는 안 되겠다.

by 언젠가

나에게는 터울이 좀 많이 나는 아들이 둘 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버렸고, 유약하고 기댈 구석 없는 남편에, 마라맛도 이런 마라맛이 없는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둘째는 없다!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며 정말 이제는 저 아이가 다 컸구나, 국가 기관에 아이를 맡겨도 되겠구나! 를 실감하자 간절하게 신생아 시절의 달콤한 분유냄새 풍기는 애벌레 같던 아기, 유아기 때 귀여움만이 세상을 구한다는 신념을 가진 듯 귀여움의 에너지를 사방으로 풍기며 뒤뚱뒤뚱 설치고 다니던 아기, 유치원에 들어가서 학예회 무대를 찢던 아기,

그때의 그 시절이 그립고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겨났다.


사람은 어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그래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는 말이 진리인가 보다. 아이 때문에 남편을 비롯한 마라맛 시월드를 끊어낼 수 없어서 괴로움에 살던 사람인데 조금 편안해졌다고 둘째를 원하다니?

사실 첫째의 육아는 전쟁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해야 했고, 임용시험도 준비해야 했다. 우는 아이를 유치원에 제일 먼저 던져놓고 나도 울면서 출근해서 엄마를 기다리며 가장 늦게까지 어두운 유치원에 남아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허겁지겁 퇴근하는 일상을 살았다. 직장동료들과 퇴근 후 식사를 한다든지 무언가를 배우러 간다는 건 사치. 여름 겨울 방학 전일년에 두 번 있는 전체 회식도 참여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는 사랑스럽고 예쁘게 잘 커줬다. 독박 육아에 독박 벌이를 하며 내 아들을 키우고 시어머니 아들까지 키워줘야 하느라 외롭고 힘들었지만 아이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었고 아이가 웃어주면 우주를 가진 듯이 충만한 순간들이 있었기에. 그래서 둘째에 대한 미련을 가졌던 것 같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둘째가 생겼다. 큰애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나가자 같은 반 엄마들이 다들 임산부가 왔다며 은은하게 배려해 주고 좋아해 줬다. 큰아이 학교의 학사 안내를 들으며 이 학교는 중점 과정 중에 줄넘기가 있고 매년 급수제라는 걸 시행해서 급수를 따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애들 줄넘기 잘해야 하고, 줄넘기 급수 못 따면 안 된다. 줄넘기가 미진하면 다음 학년을 올라가서라도 원하는 만큼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설명을 들으니 왜 이 아파트 데크에는 애들이 유독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고, 줄넘기 과정에 대한 광고가 있는 학원들 전단지가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갔다. 왜 누구누구 엄마는 PT 선생을 붙여서 애한테 줄넘기 개인 과외를 시킨다는 소문이 도는지 알겠다.

그날부터 나도 큰 애를 끌고 데크에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임산부라서 콩콩 뛰면 안 된다고 했지만 줄넘기 정도는 뭐 크게 무리가 되랴 싶어서 큰 아이와 연습을 했었고 큰 애는 무난히 급수제에 통과해서 그 초등학교를 잘 졸업했다.

문제는 둘째. 둘째가 그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도 이제 매년 줄넘기 평가를 받아야 했다.

나는 7~8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야야야 엄마가 너 뱃속에 있을 때도 형아랑 줄넘기 연습해서 형아는 줄넘기 잘했어. 둘째, 너도 엄마만 믿어! 하고 동네 문구점에서 호기롭게 김수열 줄넘기를 구입해서는 아이와 함께 데크로 나갔다.

엄마가 가르쳐 줄게~ 엄마 시범 잘 봐~~~

줄넘기를 넘기고 호기롭게 뛰는데, 어라라? 큰애 연습할 때랑 다르다?

그때는 삼십 대였고 지금은 사십대라 그런가? 큰애 때는 무려 임산부였는데도 뛸 때 몸이 이렇게 까지 무겁지 않았었는데?


무거워진 몸띵이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높이 도약하지 못했다. 땅에 착지하는 순간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렸다. 콩콩콩 뛰며 30개도 너끈히 넘겼는데 이제는 열개만 넘기니 요실금이라도 올 것 같고 아무래도 이 마흔의 몸뚱이는 줄넘기와 안 맞는 몸이 되었나 보다. 여성이 임신하면 인체의 모든 기관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 외형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비뇨기계, 내분비계, 근골격계, 정신신경계 등 모든 계통이 변해 버린다. 그런데, 임신으로 인한 변화보다 무서운 게 나이로 인한 변화인가!


엄마의 호언장담을 믿고 따라 나온 둘째는 뭐지? 싶은 눈빛을 발사한다. 엄마도 잘 못하는데? 내가 더 잘해! 하고 둘째가 소리 지른 그날로 나도 둘째를 줄넘기 강좌에 등록시켰다. 줄넘기를 돈 내고 가르친다고? 하고 비웃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부모가 직접 해줄 수 없는 교육은 사교육으로 감당해야지 어쩌겠나.


사교육의 효과는 커서 둘째도 줄넘기 급수 시험에서 한 번의 재시험 없이 매번 주어진 과정을 다 통과한다. 한발 뛰기, 쌩쌩이, 날쌘 이, 엑스자 뛰기 다 잘한다. 제2의 하준우 어린이를 꿈꾸는 하준우 키즈로 성장 중이다.


운동해야 한다, 운동이 생존이다! 굳게 다짐한 사십 대에 안 어울리는 운동도 있다. 줄넘기가 그것인 것 같다.



이전 03화사십 대의 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