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고사 인생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해 질 녘이 되면 쓸쓸한 긴 그림자가 생겨나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INFJ, 원래도 나 같은 성격의 MBTI는 불안도가 높고 부유하는 느낌에 늘 시달리는 편이었지만
11월이 되면 아직도 막연하게 답답하고 먹먹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두 번의 수능
한 번의 국가고시,
첫 회사 입사때와 두 번째 회사 입사 때 입사시험과 NCS 시험,
첫 회사를 다니며 적성에 안 맞는다고 8급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다가 거칠고 불안한 공시생 생활을 직장을 병행하며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진로를 틀어 두 번째 회사로 이직 준비하며 또 시험준비,
그리고
결혼과 함께 퇴사, 그리고 또 4번의 임용시험을 쳤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많은 선별 시험을 보고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11월이 시작되며 겨울이 왔구나 하고 느껴지면 자동으로 불안감과 중압감 원서접수 때의 긴장감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여러 선별고사에 근근이 통과 후 이제는 그냥 편안히 살겠다. 다시는 또 다른 선별 시험은 준비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몸에 스며들어 버린 그 감정들은 차가운 바람과 함께 살아난다. 이건 마치 PTSD처럼 11월의 차가움의 트리거가 되어 몸이 반응한다. 그리고 부유 불안이 시작된다.
선별고사 인생이었다. 선별 시험이라는 게 놀라운 시험인 것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아깝게 떨어지든 아주 큰 차이로 떨어지든 상관없이 떨어지면 끝. 선별되지 않으면 제자리인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 시험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노력을 하고 젊음을 바쳐도
All or Nothing.
그런 시험들을 치느라 많은 사람들이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리고 그 선별시험에 선별되지 못하면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또 어찌 저찌 그 선별 시험이라는 허들을 넘은 후 꿀 빠는 생을 기대하겠지만 사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게 그 시험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이 허무할 만큼 또 허들을 넘고 나면 또 허들이 생겨난다. 생에 꿀은 없고 차가운 바람에 실려 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러니 이제야 알았다. 원래 인생은 그런 거란 것. 내 앞에 끝없이 나타나는 높거나 낮은 허들을 넘어야만 하는 것.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멋지게 도약해서 시원하게 넘을 때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그렇게 우리는 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결국 끝으로 끝으로 나아간다는 것. 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기쁨과 좌절과 불안과 원망들을 모두 다 그저 받아들이며. 결국 산다는 게 그런 거.
혹시 아무것도 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눈을 들어서 사실 누군가가 내 생의 과업을 대신 수행하는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선별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되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굉장한 배경을 지닌 재벌의 자녀 정도 뿐이니 처음 부터 삼신할매의 선별 시험이라는 가장 고난도의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이겠지.
수능이 2주 남았다.
선별 시험의 첫 번째 허들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지금 제일 많이 지치고 힘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받아들이라.
우리의 인생은 지속적인 선별의 과정을 거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고 그게 어떤 방식이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결국엔 쭉정이가 걸러지고 채반에 남은 알맹이 같은 자신을 알게 된다.
나는 몇 번의 선별 시험을 거쳐보니 깨달았다. 내 인생은 선별되든 선별되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겨울바람과 함께 수험생 시절의 차갑고 외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보면
나에겐 늘 무언가를 통과하고 무언가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이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이 외로움이나 소외감은 이 시험만 통과되면 극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을 겪어내고 나니 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외로움과 소외감은 극복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것조차 나를 이루는 무언가였다. 채반을 통과시켜 내야 할 것이 아니라 막연한 외로움조차 알맹이에 속한 그저 나 자신이었다. 내가 관통해야 할 것은 그냥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나였다. 나에게 채반에 남은 알맹이는 알고 보니 처음부터 그냥 그대로의 나였던 것이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앞으로 생을 살며 거칠 수많은 선별 시험들은 알맹이로 남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고 할 만큼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군가는 사뿐하고 경쾌한 한방이 될 수도 있다.
생을 살아내는 과정이라면 그 어떤 경험도 다 그저 완성형에 나아가는 자신의 본질을 찾는 과정이라는것. 겪어내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절실하게 채반에 걸러진 알맹이 같은 자신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