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시계가 아니야
까르띠에.
어느 날 나도 까르띠에를 가져야겠다 하고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하자,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몰려와 끝없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손에 넣으려면 돌풍에 휩싸여서 서쪽 마녀를 찾아 모험을 떠나서 허깨비 사자랑 허수아비랑 양철나무꾼과 함께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사 오면 된다.
원래 오즈의 마법사는 판타지 동화 같지만 금 본위제를 시행하여 자본으로 농민과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으려 하는 당시 19세기 미국에 정치투쟁사가 배경에 깔려있다.
어느 시대나 말할 것 없이 자산과 자본의 탄생의 배경에는 끝없는 착취와 그에 대항하는 투쟁의 역사가 있지 않겠는가.
오즈의 허수아비는 순진한 미국의 서부 농민계급, 양철나무꾼은 동부의 공장노동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허수아비이고 양철나무꾼이었다. 오즈의 에메랄드 시는 워싱턴 DC를 상징한다고 한다.
양철나무꾼처럼, 허수아비처럼 살던 존재가 워싱턴 DC를 들어가는 순간 에메랄드의 초록빛이 영롱하게 빛나던 순간이 내 친구 손을 잡고 까르띠에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뭐 그거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시계, 남들도 다 사는 시계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시나요? 하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다.
뭐 나도 스물네 살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십 년간을 일을 해왔다. 까르띠에 시계가 비싸고 귀하더라도 하나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저렇게 사치스럽고 반짝이는 건 나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늘 자체검열에 걸렸다. 시계하나가 오백만 원부터 몇천만 원까지 하는데 그걸 손목에 차고 다니다 손목이 부러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소박한 마음이랄까?
나는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을 동경한다. 하지만 나의 성장 배경은 엄격하고 소박하고 실용적인 친정 부모님의 삶과 교육이 있었다. 동경하는 것은 반짝이는 것이지만 늘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살라고 가르침 받았다.
대출을 받는 것은 죄악이자 수치이고 저축을 하는 것이야 말로 미덕이라고 믿고 사셨던 분들이셨기에 더 나은 교육이나 대접을 받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도 분에 넘치는 사치라고 생각하셨다. 그냥 분수대로 사는 것, 조금 벌면 조금 쓰고 그중에서 저축하며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삶의 방식이라 가르침 받았다.
우리 삼 남매는 그래서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근근이 정진해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최고, 대기업, 약사, 공무원 같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어냈고 또 월급의 40프로는 저축하여 그걸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친정부모님은 열심히 살아오시고 자녀교육을 잘 시켜 독립시킨 덕분에 큰 리스크 없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맞이하셨다. 이루신 자산의 배경에는 평생을 소박하게 아끼고 늘 근검절약하는 삶이 깔려있다. 그분들이 훌륭하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유년기 청년기 시절 디자인은 고려 안되고 실용성만 강조된 나의 투박하고 실용적인 옷이나 가방 같은 소유물들이 초라해 보였다. 더 아름다운 것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한번도 예쁜것들을 사달라고 한적은 없다. 그런것들은 나의 것이 아닐뿐더러 그런것들을 탐하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늘 가르침을 받아왔다. 사춘기 시절, 수학여행때 친구들이 모두 유행하던 미치코 런던 청바지를 입고 왔을때도 나는 꿋꿋하게 학교 체육복을 입었다. 나만 없어 미치코 런던! 했다가 헛바람이 들어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유행만 따라가면 인생망한다고 걔들은 대학 떨어져도 너는 공부잘하니 좋은 대학 갈꺼라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실용적이고 절제되는 삶의 방식은 꼭 소비뿐만이 아니라 감정에도 적용되었다. 친정부모님은 소비도 감정도 모두 엄격하고 절제하는 캐릭터들이라 한번도 자녀들의 어리광을 받아주거나 감정적인 공감을 해주신적은 없다. 지금은 안다. 너무나 정직하고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사느라 그랬다는것. 소비를 절제하는 그 첫번째 시작은 사실 감정의 절제라는것. 굉장히 절제된 감정과 자기 검열이 있어야만 이 자본이 가장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것. 내가 살아보니 가장 잘 안다.
가끔 친정에가서 엄마에게 사는 어려움 직장생활의 힘듬, 상사의 뒷담을 하면 늘 엄마는 세상에 안힘들일이 어딨니. 그래도 참고 다녀라, 니가 더 잘해라 더 노력해라 라고 이야기하신다. 여기서 더 어떻게 노력해 엄마? 하고 반문이 나올 만큼 더 노력해라 더 참아라 원래 세상은 참고 인내하며 사는 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사십이 넘어 많은것을 이루고 지켜낸 딸에게 여전히 주고 싶은가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 화를 냈을껀데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건 수긍이 간다. 나는 친정엄마의 삶의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면서도 내 한 달 치 월급의 몇 배나 되는 사치스러운 것들을 소유하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되었다. 그 돈이 있으면 저축하고 저금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충분히 누릴 능력이 있을 만큼 벌어도 그걸 나에게 쓰는 것은 죄스러움과 민망함이 깔려있다.
내 마음의 저 깊은 곳에는 아름다움과 반짝임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그리웠다. 그래서 내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은 반짝임 그 자체셨다. 호탕한 씀씀이와 온몸에 걸친 명품들은 내 눈을 멀게 했다. 연애할 때 늘 넘치도록 멋진 곳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사주시고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르라 해서 고심해서 고르면 하나 더 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렇다. 시댁식구들은 자신과 남에게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하게 소비하고 과시했다. 소비뿐만 아니라 감정도 넘쳤다.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감정도 소비도 과하고 흘러 넘치는 사람이였다. 불같이 화를 내다가 한없이 너그러웠다. 시어머님은 늘 아름다운 까르띠에나 샤넬을 두르고 다니셨다. 많은걸 소유하시고도 또 늘 새로운 것들을 사들이셨다. 며느리를 불러 일을 시키시거나 과하게 삶에 관여하며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시고 자신이 그렇게 까지 며느리를 부릴 수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하셔서 어머님 친구들 모임에 며느리들을 부르곤 했는데 또 앞치마를 두르고 과일을 깎으며 손님 접대를 하고나면 그만큼 많이 기뻐하며 용돈을 주셨다.
나는 너무나 힘겹게 그 굴레를 끊고 더 이상 어머님의 개인 비서나 개인 청소부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아랫 동서는 꾹 참고 그런 역할을 하고 까르띠에 주얼리를 달게 받아 가족 모임이 있는 날에는 늘 내 눈앞에서 자신의 손목을 은은히 휘두르고 다녔다.
그게 샘이 났던 시절도 있었다. 어머님은 늘 일한다고 바쁜 큰 며느리보다 전업주부라고 부리기 쉬운 둘째 며느리를 더 선호하시고 더 많은 보상을 해주시곤 하시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너도 이렇게 둘째처럼 납작 엎드리면 보상이 있을 거라며 나와 그녀를 비교하셨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 작고 반짝이는 것을 얻기 위해서 둘째 며느리가 삼켰을 쓴 맛을 알기에 작고 반짝이는 것은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지 타인에게 하사 받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지금은 그렇게 호탕하고 씀씀이가 크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소비의 결말을 안다. 감정도 소비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니므로 언젠가 말라 사그라 든다. 많은 자산을 이루셨지만 지키지 못하고 다 소비해 버렸고(지금 생각해도 입이 쓰다. 아들에게 물려주겠다, 이거 받으려면 나한테 잘해라하고 그렇게 큰소리 치던 건물은 이젠 없다.) 그렇게 반짝이는 것을 탐하며 부르면 오던 둘째 며느리는 어머님을 떠났다. 그러므로 소비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사려는 의도 자체가 얼마나 안타까운 시도인지.
사랑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친해지고 싶음 마음 같이 당연하고 따뜻한 베이스가 없는 상대가 내가 갑이고 너는 을이니 나에게 굽히면 이거 하나 사줄게 하며, 물건으로 사람 마음을 사려고 하고 조종하려고 하면 그 관계에서는 도망쳐야 한다.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십 년 동안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지만 사실 돈이라는 게 늘 어딘가 나갈 구색이 생겨서 빠져나간다. 연말에는 조금 남는가 싶으면 애들 치과 교정, 스키캠프, 가족 여행, 칠순 잔치 같은 자식과 부모님을 챙겨야 하고 목돈이 드는 일들이 생긴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 리스크도 있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돈을 벌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쓴다는 것.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가치라는 걸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보니 안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건 결코 아깝지 않다.
결국, 나는 늘 19세기 미국의 소박한 농민이나 공장공처럼 일을 하지만 비싸고 작고 반짝이는 것을 소유할 겨를이 없었다. 허수아비나 양철나무꾼은 에메랄드 성에 들어가면 눈이 멀어버린다. 엄마는 나에게 눈이 멀어버릴 수 있으니 아에 모험자체를 떠나지 말라고 가르쳤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내지 말라고. 그런데 생은 그런게 아니다. 결혼할때 시어머니는 예물로 고르고 싶은건 뭐든지 고르라고 큰소리 치셨지만 그때 나는 까르띠에가 뭔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정엄마가 니 수준에서 너도 니 남편에게 해줄 수 있을 만큼만 받으라고 훈수하셨기에 알았더라도 예물로 천만원이 넘는 시계를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천만원짜리 시계를 고르면 나도 천만원짜리 시계를 선물해야 하기에 내가 내 능력으로 되 값아 줄수 있는 이상은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받으면 안된다고. 그것이 남편이나 부모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받아야 한다는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전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허수아비나 양철 나무꾼의 삶보다 돌풍에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모험을 떠나고 싶고 눈이 멀어 버리더라도 에메랄드 성에 가보고 싶은 내 마음은 어쩌란 말인가.
남편의 주얼리 박스에는 까르띠에 러브링이 있다. 알고 보니 그건 전 여자 친구와의 커플링이었다. 그는 불경하게도 현부인에게는 다이아 없는 일반 밴드링으로 청혼했지만 전 여자 친구에게는 까르띠에 러브링을 선물했던 사람이고 사람이고 심지어 그걸 버리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는 사람인 데다 들키고 나서도 그게 뭐가 문제냐며 웃어넘긴 사람이다.
시어머니, 동서, 고모 등 시댁의 여성 구성원들은 모두 시어머니가 하사한 까르띠에가 있지만 나는 이십 년 동안 내 자식들과 사고를 치는 남편을 건사하며 일을 하고 가정을 유지하느라 에너지가 없어서 그녀가 호출하면 쪼르르 달려가지 못했으므로 하사 받지 못했다.
돈을 내고 사면되는 명품이고, 돈만 있으면 사면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나는 돈이 있어도 그 돈을 나에게 쓰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내 손목에 저런 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차는 것보다 연말에 여유가 있으면 주택담보대출 원금을 갚거나 애들 윈터 캠프를 보내는데 쓰는 게 더 중요한 일 같았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나도 까르띠에를 살 거다.
내 돈으로, 내 힘으로.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가져도 된다. 내 힘으로 충분히 소유할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충분히 가지고 누릴 자격이 있음에도, 명품을 살 생각은 못하고 저렇게 아름다운 것들은 다만 누군가가 선물해 줘야지만 가질 수 있다고만 여기며 나 스스로를 검열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나는 왜이리 나에게 인색했을까?
내돈 내산 하러 까르띠에 매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