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짚고 출근 5일 차

첫 점심 외식 메뉴는 프렌치토스트로 정했다.

by Heather

Prologue.

2025년 1월 1일. 본가에서 엄마표 떡국을 먹고 클라이밍을 하러 가서 크게 다쳤다.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던 문제를 풀러 올라가서 2m에서 추락. 왼쪽 발목으로 착지하면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고 119 구급대원분들과 함께 암장을 나왔다. 앰뷸런스에 실려간 병원에서 X-레이를 찍고 수술 밖에는 답이 없다는 답을 들은 뒤 겸허히 입원수속을 밟았다. 1월 2일 오후 1시쯤 수술실에 들어갔고, 내 수술을 담당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부러질 수 있는 뼈는 다 부러졌더라. 어쨌든 수술은 잘 됐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10일을 병원에 입원해 누워만 있다가 1월 11일 토요일에 퇴원했다. 그 사이 생전 걸려본 적 없는 A형 독감까지 걸려 혼자 2인실에 격리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새해의 문을 열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7일의 연차 사용을 끝으로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이 일기는 적어도 2달간은 꼼짝없이 왼쪽 발을 쓸 수 없게 된 내가 병원을 나와 다시 일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신세를 지고 마는 하루의 기록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 나오자마자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집에 산다는 이유로 출퇴근 자체가 고행이 되어버린 나의 매일의 모험일지다. 신세 지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젠 누군가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신세 지는 법을 배워간다. 졸지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버린 내게 기꺼이 배려와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하려 한다. 이 글은 깁스를 푸는 날 끝을 맺을 것이다.



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목발 짚고 5일 차



다치고 난 뒤로는 밖에 나가서 밥 먹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다치기 전엔 집에서 1.9km 떨어진 회사에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도 걸어서 했지만 다치고 난 뒤로는 행동반경이 엄청나게 좁아졌고 점심도 자리에서 먹거나 가까운 소회의실에서 먹는 게 당연해졌다.


사실 나의 2025년 캘린더는 2025년이 오기도 전에 수많은 점심 약속과 저녁 약속으로 1월 3주 차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수술 후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약속을 잡았던 이들에게 일일이 카톡을 해 나의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외부 약속은 그렇다 치고, 회사 인트라넷 캘린더에 적어둔 점심 약속들은 일일이 기억이 나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할 수밖에 없었는데 회사에 복귀하고 나니 딱 하나의 약속만이 '다가오는 일정'으로 남아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밥을 먹는 홍보팀 J과장님과 우리 팀 B대리님과의 약속이었는데 당분간만 빠지겠다는 나에게 1층에 있는 파리크라상에서 브런치를 먹자고 제안해 준 덕분에 나도 첫 점심 외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리크라상 전국 매출 1위를 자랑하는 곳답게 웬만해서는 점심에 자리를 잡기도 어렵고 가격도 세서 웬만하면 오지 않는 곳이지만 이제 내가 갈 수 있는 점심 식당은 이곳뿐이다. 일부러 B대리님이 11시 35분에 내려와 자리를 탐색했는데도 빈자리가 없어 목발로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4인 자리가 났다. 4일간 메인으로 샐러드를 먹어서인지 제일 살찌는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었고, 고민 끝에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했다.


회사 1층 파리크라상 메뉴 도장깨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YES!!!!!


다행히 메뉴는 기다리면 자리로 갖다 주는 시스템이라 동료들을 괴롭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브런치 메뉴를 고르면 커피가 함께 나와서 좋았다. 얼음이 들어간 커피를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목발을 짚은 후로는 뚜껑이 달린 커피나 캔 커피만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얼음 가득 든 커피가 어찌나 그리운지...!


발이 다친건데 왜 사진실력까지 줄어든거지...?


드디어 메뉴가 나왔고, 브런치 맛집답게 구성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느끼하지도, 너무 달지도 않아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립고 그리웠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중간중간 리프레시를 해준 덕분일까?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먹는 밥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회사 1층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었고, 굳이 나 때문에 점심시간마저도 회사 건물에서 밥을 먹어야 했던 동료들에게도 참 고마웠다.


하루에 평균 1-2만보를 걷던 내가 이제는 1-2 천보를 걷는다. 그런데 먹는 건 도저히 줄지를 않고 오히려 더 잘 먹고 있다. 그래서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2달은 이렇게 생활해야 할 텐데 갑자기 엄청나게 살이 찌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도 든다. 휠체어에 앉아 괜히 몸을 움직여도 보지만 그저 숨쉬기 운동 정도다. 부디 내 몸이 기초대사량 높은 몸이기를 바라본다.


아무튼 오늘은 첫 외식으로 만족감 충만한 점심을 보냈다. 출근하고 처음 맞이하는 주말이 코 앞이라 조금 흥분되는 게 사실이다. 5일간 별 일 없이 무사 출/퇴근한 나 자신을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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