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Nov 03. 2018

경쟁률 2000:1의 대가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자존심을 붙잡고, 8년 차 마케터가 되었다.

"올해 공채 지원자만 7천 명이 넘었어요. 그중에 마케팅은 5천 명을 넘었고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패션회사 신입사원을 뽑는 공개채용 면접날, 인사팀 과장님이 면접 대기 중인 마케팅 직군 지원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맞다. '서류 광탈'이라는 말이 아이돌 이름 불리듯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대(그리고 지금도 여전히)엔 면접에 온 것만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했다.


대기업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중견(a.k.a중년) 패션회사 공개채용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지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았지만 귀하디 귀한 '마케팅팀 신입' 자리에 앉아보려 나를 포함한 5천 여명의 취업준비생들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길고 긴 대기의 끝에 들어간 다대다 면접장에는 회장님을 포함해 총 9명의 임원들이 (갓 론칭한 아웃도어 브랜드) 등산복을 입고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총 5명의 여성 지원자들이 면접을 봤고, 예상했듯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언변을 자랑했다. 침을 튀기며 있는 말 없는 말로 자기 PR을 하는 와중에 한가운데 앉아 계시던 회장님은 연신 하품을 했다. 그도, 나도 아침 일찍부터 오늘을 준비했음이 틀림없다.


면접 다음 날, 속전속결로 '합격통보'를 받았다. 아마 홍보대행사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던 게 플러스 작용을 한 것 같다. 합격의 기쁨을 채 누리지도 못하고 3박 4일 산악행군을 위해 다시 사옥으로 모인 40여 명의 공채 동기들. 근데 이상했다. 함께 면접에 들어갔던 우리 팀 인원들은 한 명만 빼고 다 합격을 한 상태였다. 마케팅 면접 팀이 총 3팀이었는데 1팀에서만 4명이 합격했다고...? 많아봤자 1-2명 뽑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다 뽑아놓은 거지?


인사팀의 설명은 이러했다. "다들 스펙도 좋고 말도 너무 잘하고  회장님이 어찌나 맘에 들어하시던지. 일단 다 뽑으라고 지시하셔서 뽑았고, 팀 배정은 3개월 간의 교육기간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하도록 할게요." 결국 3개월 동안 인성과 태도, 열정과 역량 등... 그 모든 걸 다 지켜본 뒤에 누구로 할지 정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던 고통의 3박 4일 산악행군, 매일 아침 7시 30분에 회사 앞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물류센터에 가서 일했던 한 달, 매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밤늦게까지 일했던 두 달. 체력과 열정 없이는 소화할 수 없었던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총 3명의 신입사원이 마케팅팀에 배정되었다.


결론만 말하면,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마케팅팀의 막내 자리를 두 달도 못 채우고 영업기획팀으로 방출당했다.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얻어냈다고 하기엔 너무 생소한 직무였다.


교육과정 당시 난 대놓고 임원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업계 1위 홍보대행사에 있다가 온 애, 회장님 앞에서 발표도 잘하던 애. 근데 결말은 마케팅팀 퇴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마케팅팀엔 TO가 없었고 회사의 강요로 억지로 1명 뽑을까 했던 건데 갑자기 3명이 들어와서 황당해했다고. 어쩐지, 팀 배정 첫날 선배들의 눈빛이 싸했다.


물론 나 혼자만 발령이 난 건 아니었다. 마케팅팀에서는 나와 다른 여자 동기가 다른 팀에 있던 동기들과 함께 발령 2시간 전 인사 이동 통보를 받은 것이다. 발령이 나고 그다음 날, 난 이를 악물로 영업기획팀에 내려갔다. 영업기획을 해본 마케터랑, 안 해본 마케터랑 분명 다르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가서 잘해보자 싶었던 것이다. 독한 년. 나와 함께 아웃도어 브랜드 영업기획팀으로 발령 난 동기는 끝내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 버텼다. 매일 마케팅팀 선배들이 듣는 자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고. 그렇게 멋지게 자기표현을 했던 그녀와는 너무 달랐던 나의 행보에 동기들 여럿이 틈날 때마다 와서 왜 퇴사하지 않냐고 물었다. 차라리 보란 듯이 나가라고. 자존심 상해서 어떻게 있냐고.


하지만 퇴사하는 게 더 쪽팔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퇴사한다고 또 어디에 들어갈 건데? 자신이 없었다. 그저, 어디 가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목표로 울지도 않고 속상한 티도 내지 않고 독하게 영업기획팀으로 출근했다. 그 사이, 새 팀에서 회식도 하고 같이 뮤지컬도 보고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료만 살피고 있던 2주가 지나고, 막 영업기획 일을 배워보려고 하는 찰나 인사팀 부장님이 친히 나를 찾아오셨다. 잠깐 얘기 좀 하자는 부장님의 용건은 내가 다시 마케팅팀에 갈 생각이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내가 이 팀에 와서 적응을 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마케팅팀에서 시위 중이던 내 동기 때문인지, 마케팅팀 팀장님이 사장실에 올라가 원래 있던 2명을 다시 데려와서 잘 키워보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황당했다. 화가 나서 그냥 여기 있겠다고 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를 생각해야 했다. 내가 꿈꿔온 로드맵, 내 인생의 커리어를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난 자존심도 없는 애처럼 다시 마케팅팀행을 선택했다.  


다시 마케팅팀에 돌아와 선배들과 서먹서먹한 관계로 1년, 2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있을 때 있었던 선배들은 거의 다 자리에 없었다. 회사는 끊임없이 마케팅팀을 '돈만 쓰는 팀', '돈 낭비하는 팀'으로 매도했고 선배들은 그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나섰다. 그 사이 나는 주임이 됐고, 회사에서 제일 큰 여성복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 속에서도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했던 가장 치열했던 시간. 그렇게 Happily ever after 하게 지냈냐고? 아니, 그 뒤로 한번 더 영업기획팀에 발령이 났다(이번엔 마케팅팀 해체, 영업기획팀 전원 발령이었다).


그리고 영업기획팀 소속으로 6개월을 일했다. 회사에서 가장 예민하고 센 본부장님과 디자인 상무님 사이의 기싸움을 받아내면서 1년에 4번 화보 촬영을 해야 했고, 포스터는 20번가량을 수정해야 했다.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최종이라는 말도 진짜가 아니었다.


점주 품평회가 있을 때면 '마케팅이니까 마카롱 잘 알잖아.'라는 신뢰 속에서 마카롱을 사러 이 카페, 저 카페를 기웃거려야 했다.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땐 400개가 넘는 매장에 들어갈 비타민C 사은품을 빠르게 준비해야 했고, 그 와중에 여러 브랜드를 놓고 비교 시음도 했다. 1만 개에 가까운 비타민을 대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아서 겨우 발주를 했는데 갑자기 사은품을 취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처리를 빨리 한 죄'로 사장실에 불려가 혼나고 업체 대표한테는 '당신 집 앞에 비타민 다 던져놓고 갈 거야.'라는 협박도 들어가며... 결국 독일에서 온 비타민C는 원래보다 수량을 조금 줄여 각 매장으로 잘 배달되었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내게도 비타민C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케팅이 제일 폼나고 멋진 직업 아니냐고 물을 때 난 이렇게 답한다. '마케팅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첫 번째 힘, 두 번째도 힘, 세 번째도 힘이에요.' 체력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엔 멘탈이 얼마나 강한지가 중요하다고. 그다음이 기획력과 실행력과... 또 뭐가 필요할까. 뭐 그렇다고.  


경쟁률 2000:1의 숫자에 속아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일하기엔 수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의 자존심.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자존심을 붙잡고, 올해 8년 차 마케터가 되었다.


 


* 앞으로 브런치 매거진 <대리 나부랭이의 마켙ing>을 통해 마케터란 무엇인가, 마케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려 합니다. 정답이랄 건 없겠지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