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전히 그대로
(감사하게도) 나의 부모님은 나를 키우시는 동안 ‘여자가 어디서...’를 앞세운 말로 상처를 주시거나 아들 밖에 모르는 바보들은 아니셨다. 오히려 내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지지와 응원을 표하셨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니까, 여자라서 당연히 참아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에 암묵적 동의를 표하며 서른 넷을 맞이했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82년생 김지영 정도로는 우리 할머니, 엄마들의 고된 세월을 다 설명할 수 없다며 자조 섞인 비평이 오갔다. 50년대생과 80년대생을 감히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너무나 남성중심적이다. 육아는 복직 전 ‘여자가 좀 더 쉬는’ 기간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일 잘하는 여성은 무능력한 남성의 양심 없는 경계심과 시기질투에 한없이 상처 받다 먼저 사표를 던진다. 임신이라도 하면 무슨 죄를 진 것 마냥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권력을 쥔 남성의 야만적인 괴롭힘에도 손을 쓸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폭력과 비리는 매 순간 이루어진다.
몇달 전 한 기사에서 소개했듯 패션회사의 남녀 연봉차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물론 남성이 훨씬 많이 받는다. 그렇다면 정말 그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할까? 잘할까? 더 꼼꼼한가? 성과가 엄청난가?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열심히 했는데 마흔 즈음이 되면 왜 남성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고 여성은 자신의 가족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을까? 나를 임신하고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관둔 우리 엄마가, 계속 그곳에 몸담고 있었다면 얼마나 멋진 여성임원이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몇번의 시대가 흘러야 이런 영화를 보고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운 남자들은 자기가 김지영이라고 생각해서 운다는 말... 너무 공감한다. 그리고 이런 얘기하면 분명히 “여자도 군대가든가!” 하는 사람 꼭 있다.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