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악

류승완의 <베테랑 2>

by 김기범


형사 서도철은 이번에도 강력 범죄들과 맞닥뜨리면서 고군분투한다. 그런 와중에 사건 현장에서 지구대 순경인 선우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모범적인 경찰의 예로서 미디어에서 한번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에게 호감을 느낀 도철은 그를 단박에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이고 선우도 순순히 그를 따른다. 하지만 미심쩍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도철은 결국 이 일이 경찰과 관련돼 있음을 깨닫는다. 때마침 범인을 주저 없이 해치우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이상함을 느낀 도철은 그가 바로 해치임을 눈치챈다. 진실이 드러나자 해치는 그의 아들과 주변 사람들을 인질로 협박하며 그를 몰아세운다. 정의와 복수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그는 과연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괴롭힘을 일삼던 아이가 왕따가 되고 경찰이 알고 보니 사이코패스라니. 악의 형태는 이제 도무지 예측할 수 없게 변했다. 과거에는 돈 많은 자들이 악역을 자처했고 착하고 가난한 자들의 고통받는 모습이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은 선과 악의 경계가 흐려졌다. 종잡을 수 없는 악의 양상. 어쩔 땐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선우도 스스로를 해치라고 지칭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해치라 부르며 영웅으로 추앙한다. 복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행해지는 연쇄살인은 진정한 정의일까?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사적 제재가 과연 정당할까? 더구나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를 함부로 논할 자격이 있을까? 모두가 통쾌한 응징만을 바라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구별하고 피해자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콘텐츠를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다. 언론은 자극적인 요소만 부각해 사건을 기사화하기에 급급하고.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지만 금세 관심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진실처럼 퍼지면서 왜곡된 사실 속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진실은 점차 잊히고 사람들은 자정능력을 잃어가며 더 뻔뻔해질 뿐이다. 해치 역시 이런 부정확한 보도를 바탕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는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왜곡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이용해 도철의 가치관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도철은 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데 좋은 살인이 있고 나쁜 살인이 있어? 살인은 살인이야” 라며 단호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모두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내 안의 분노도 과연 정당한 걸까. 종종 끔찍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죽여 마땅하다”는 말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피해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안에 차오르는 분노를 해소하려는 핑계일 뿐인가. 가끔 내 안의 비질란테처럼 끓어오르는 정의감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분노의 방향성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하겠다. 아마도 내 감정은 해치의 신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나는 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악의로 인해 우리도 억울하게 가해자로 오인될 수 있다. 언제나 의도치 않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그러니 사적 제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법과 판결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은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허술하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정의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특별하다. 이처럼 법의 한계를 느낄 때면 베테랑 같은 화끈한 영화가 땡긴다. 배고플 때 간단히 허기를 채우는 라면처럼 소박하지만 익숙한 한 끼 같은 맛. 물론 가끔 물 조절을 못해 짜거나 싱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조차도 이 시리즈가 가진 매력의 일부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도철은 가족의 일상을 지키는 인물이자 아들에게 사과할 줄 아는 반성하는 어른이다. 불신의 시대에서 도철 같은 인물이야말로 가장 믿음직한 희망이 아닐까. 나쁜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서 좋은 어른은 늘 필요로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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