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당신을 축복하지 않더라도

이언희의 <대도시의 사랑법>

by 김기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스스로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나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거나 혹은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우린 마치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어쩌면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순간부터 인간은 철저히 외로운 존재 혹은 이방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남과 다름을 혐오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자신을 방어하려는 걸지도 모르죠. 때때로 우리는 그 시선들을 피해 더 나은 사람이 아닌 아예 다른 사람이 되려고도 합니다. 이렇듯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 속 재희와 흥수 모두 ‘자신’이 되려 애쓰는 인물들입니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재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그만큼 사랑에도 늘 진심을 다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죠. 그러나 그 모습 때문에 걸레라는 억울한 비난을 받으며 상처 입기도 합니다. 반면 번듯한 외모를 지닌 흥수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남들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숨기고 있습니다. 바로 성소수자라는 사실이죠. 그는 세상에 드러나길 극도로 꺼리고 정체성을 숨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알기에 대도시는 그에게 위태롭고 피곤한 곳이죠.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늘 거리를 재며 도망만 다닙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타인의 날카로운 경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하죠. 그러나 우연히 서로를 알아보며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서로가 아웃사이더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소울메이트가 되어 상대를 지켜줍니다. 세상에서 조금 유별난 존재로 낙인찍힌 그들은 함께라서 두렵지 않다는 걸 느끼죠. 그렇게 흥수는 재희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재희는 흥수를 통해서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습니다. 그들은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가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스케치는 매력적으로 묘사되거나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지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성장이 다 축복받지는 못합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응원하지 않을 때, 그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재희는 남자친구와 직장 생활을 위해서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흥수는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 속 성장은 꼭 아름답고 숭고하게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변화를 유치하다며 깎아내리려 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라 말합니다. 누군가 당신을 비웃는다고 해서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격려하죠. 맞아요. 당신이 당신이라는 사실은 약점도 이상한 일도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 차가운 시선 속에서 흔들리지 말고 용기를 갖고 나아가세요.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세요. 재희의 말마따나 사랑도 보호필름을 떼고 하는 것처럼 성장도 상처받고 흠집 나면서 이루어지는 걸지도 모르니 말이죠. 그래도 만약 위로가 되지 않는 다면 상상해 보세요. 이 대도시 속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닮은 사람을, 아니 당신을 사랑할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전 그런 당신의 사랑법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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