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면 막상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죠. 밤이 깊어질수록 그 무게는 점점 더 커지고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평범한 하루가 반복될 뿐인데 나는 왜 점점 희미해지는 걸까요? 어디에서도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아무도 날 궁금해하지 않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함 속에서 점차 작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내 모습이었을까요?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 씨의 경우는 어떨까요. 정해진 일과를 철저히 지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행자 같기도 합니다. 도쿄 스카이트리와 대비되는 그의 작은 집은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요새처럼 보이죠. 출근길에 듣는 올드팝과 퇴근 후에 읽는 소설들은 그의 외로움을 감추려는 작은 방패처럼 느껴져요. 겉으로는 완벽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해도 예상보다 그의 일상은 작은 변화에도 쉽게 휘청거립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조용히 깊은 상념 속으로 가라앉곤 하죠. 가출한 조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오랫동안 헤어졌던 동생과 포옹한 직후 그는 예기치 못한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눈물은 그동안 감춰왔던 슬픔의 무게를 조용히 드러내죠. 한 번쯤 찾아오라는 동생의 말에도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빈틈없이 짜인 삶 속에도 의심과 고독은 조용히 스며들어 있죠. 그래서일까요. 따뜻한 미소 뒤로 언뜻 그늘이 느껴지는 건 단지 제 기분 탓일까요?
헌책방 주인은 그가 고른 책을 보고 말하죠. “퍼트리샤는 불안한 감정을 참 잘 묘사해요. 덕분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니까” 그는 책장을 넘기며 자신의 불안이 그 안에 녹아 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을 구분할 줄 안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하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감정을 마주하기보다 외면하는 데 익숙해지고, 차라리 입을 꾹 다문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거기서 벗어나려 애써도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우리를 놓아주지 않죠. 좌절과 절망에서 도망쳐 봤자 결국 또 다른 좌절과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아마 내가 사는 세계의 반대편에서도 그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거겠죠.
삶이란 마치 구멍 난 배와 같아요. 바닥의 구멍을 메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라앉을 수도 없으니. 때때로 모든 게 치밀하게 계획된 불행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누군가는 잠수함을 타고 누구는 비행기를 탄다고 불평한들 내 처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할까요. 어차피 가라앉을 텐데 앞으로 나아간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솔직히 절망에 빠진 채로 손을 놔버리는 게 더 쉬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쩌면 중요한 건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가라앉는 순간까지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가끔은 희망이란 게 그저 절망을 견디기 위한 허상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노를 젓는 이유는 단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 끝이 무엇이든 우리는 스스로를 놓아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오직 자신만이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 있죠. 아마 과거의 히라야마 씨는 모든 걸 내려놓으려 결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마주 했겠죠.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그 찰나의 순간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살게 한 그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 그는 고개를 들고 나무를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그래서 매일 꿈을 꾸고 그 빛을 사진에 담아 간직하려 했을지도 모르죠.
살다보면 문득 느껴지는 진정한 생의 순간이 있습니다. 극 중 동료 타카시에게는 화장실 청소 시간마다 찾아오는 친구가 있죠. 그 아이는 어김없이 타카시를 찾아와 오직 그의 귀만 만지러 옵니다. 이에 타카시는 “얘, 진짜 친구는 귀고 나는 그냥 덤이지” 라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어쩌면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마치 귀를 만지는 짧은 찰나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몰라요. 그래요. 인생은 사실 덤일 뿐이고 그 짧고도 선명한 순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갈수록 짙어집니다. 아마도 평생을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어요. 그리고 히라야마 씨도 어렴풋이 알고 있겠죠. 이 무력한 평화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일상도 점점 좁아져서 언젠가는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버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김없이 내일의 해는 무심하게 떠오르고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이 비슷해 보여도 실은 빙고판처럼 예측할 수 없는 우연들로 가득 차 있죠. 때로는 원치 않는 선택과 실수로 삶의 빈칸이 채워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대부분의 날은 덧없이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정해진 의미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에게 남는 건 결국 ‘의미 있는 순간’들이니까요. 어쩌면 완벽한 하루란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지금일 뿐이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