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
출간 기념회가 한창인 가운데,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독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한 여성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잉그리드의 팬이라며 책을 선물할 거라 말하죠. 잉그리드는 여자친구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여성은 잠시 망설이더니 대신 한 문장을 적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
그날 잉그리드는 사인회에 찾아온 친구를 통해 마사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오랜만에 마사를 찾아간 잉그리드는 금세 그녀와 다시 가까워지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죠. 그녀는 연명 치료의 고통을 토로하며 삶이 너무 억울하고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말합니다.
사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딸에게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딸은 냉담하게 반응할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아버지를 내버렸다며 오해한 채로 어머니를 평생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줘도 딸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 죽음은 마사에게 그 오해를 풀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남겨둔 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마지막은 더욱 불행하게 느껴지죠.
죽음을 앞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현실의 모호함 속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애써 외면했던 감정, 회피했던 관계, 해결되지 못한 갈등들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더욱 선명해지죠. 하지만 이 모든 걸 돌이키기엔 죽음 앞에 남은 시간은 너무 짧기만 합니다. 그렇게 뒤늦은 후회 속에서 우리의 삶은 비참하게 막을 내릴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마사는 안락사 약을 구해 조용한 곳에서 평온히 마지막을 맞이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죽을 때 옆방에 있어달라고 부탁하죠. 모두가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끝내 잉그리드만이 그녀의 곁을 지키기로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납니다.
종군기자였던 마사는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죽음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잔혹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끝없는 고통 속에서 무너져 가느니 적어도 자신의 결말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으로만 끝나진 않죠. 그것은 떠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죽음이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을 뒤흔들고 그 방향마저 바꿔놓기도 하니깐요.
잉그리드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었고 마사의 임종을 지켜주는 일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하지만 결국 그녀는 마사의 곁을 지키며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올 것임을 깨닫습니다. 잉그리드가 마사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 것처럼. 과연 우리 또한 타인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감정이죠.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은 홀로 남겨진다는 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히 안락사나 존엄사 같은 윤리적 논쟁을 넘어서.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할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의 존엄은 떠나는 당사자의 선택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완성되는 건지도 모르죠. 그래요. 죽음이란 분명 차갑고도 두려운 것이지만, 그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눈이 소리 없이 온 세상에 나리고 있습니다. 그 정적 안에서 퍼지는 고요함은 원망과 오해를 희미하게 만들고 슬픔 속에서도 어딘가 평온이 깃들게 합니다. 마사의 딸이 그녀가 떠난 자리에 누워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마사의 존재가 남긴 환영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게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키죠. 삶과 죽음이 겹쳐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착각마저 들어요. 마지막으로 영화의 원작 소설인 “어떻게 지내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