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미키 17>
아침에 눈뜨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한 뒤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죠. 반복되는 일상은 마치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은 때로는 지겹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어쩔 땐 보잘것없고 초라한 기분에 죽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에는 분명 끝이 있고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망각하죠.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보다 미키는 더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니까요.
미키는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익스펜더블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죽으면 생체 프린터로 새로운 몸을 만들고 뇌에 이전 기억을 이식하는 일종의 복제인간이에요. 그리고 열여섯 번이나 죽고 다시 만들어져 사람들은 지금 그를 미키 17이라고 부릅니다. 미키가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동안 대우는커녕 취급은 정작 물건과 다를 게 없죠. 사실 미키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인간에 가까웠죠. 그가 성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고. 마카롱 사업 같은 한탕을 노리는 것 말고는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죠.
사실 익스펜더블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닌 단 하나 죽을 수 있느냐예요. 네 맞아요. 미키는 철저히 죽음을 전제로 존재하는 소모품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이 단순히 영화적 장치로만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쩌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도 약자들은 최소한의 삶을 위해 최대한의 위험을 끌어안고 살아가죠. 사회는 그들을 능력 없는 사람들이라며 쉬이 무시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필요에 따라 대체되며 소모될 수 있는 존재로 기능하죠. 그렇게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쓰이고 버려지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미키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은 우리 역시 시스템 안에서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노동력일 뿐이니까요.
사람들은 흥미로운 무용담을 듣고 싶다는 듯 미키에게 묻습니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그러나 그 질문은 마치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죽어가는 기분이 어때?" 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죽음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며 여러 번 겪는다고 해서 덜 아프거나 덜 두려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자 결코 체화될 수 없는 서늘한 감각이죠. 애초에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느끼며 그것을 설명할 수 조차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죽는 기분을 묻는 행위는 미키의 존재 자체를 향한 폭력이 되죠. 그런데도 미키는 수많은 모멸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죠. 미키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던 이유는 그의 연인 나샤 덕분이었습니다. 매번 그가 죽을 동안 곁에서 진정으로 그를 걱정하고 바라봐준 한 사람이죠. 다른 이들이 미키에게 죽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동안에 나샤만큼은 그 질문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무례한 행동에 분노하며 존엄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미키를 대신해서 싸우죠. 그리고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미키를 조용히 끌어안으며 슬퍼합니다. 시스템은 그를 하나의 소모품으로 보았지만 유일하게 나샤만이 그를 끝까지 한 인간으로 대하죠.
과연 미키가 죽고 남긴 것은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할까요? 많은 이들은 그를 17이라는 숫자로 불렀지만 나샤만이 미키 반스라고 부르죠. 그리고 멀티플에 처형될 위기에서도 17과 18 모두 내 미키라면서 그를 감싸줍니다. 그녀에게는 미키는 복제품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 그 자체였죠. 사랑은 때론 한 사람의 존재를 결정짓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이름으로 불러 줄 때 우리는 단순한 역할이나 기능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숨 쉬게 해요.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대상이 아닌 존재로 남게 합니다. 그래서 미키 18은 미키 17과 나샤가 함께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자폭 버튼을 눌렀을지 모릅니다.
미키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오랫동안 죄책감 속에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미키 18은 그것이 단순한 기계 결함이었다고 말하죠. 그제야 미키 17은 스스로를 용서할 용기를 얻고 더 이상 빨간 버튼 앞에서 망설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진심 어린 위로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변화할 힘을 줍니다. 물론 삶의 많은 부분은 결국 혼자서 감당해야 하지만 영화 속 인류를 구했던 것처럼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요.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겠죠. 어때요. 이제는 당신 앞에 놓인 빨간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