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는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난이 남긴 흔적들을 바라봅니다. 그녀는 이제는 폐허가 된 곳에 찾아가 열린 문들을 닫아서 지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합니다. 그 문들은 과거의 재난이 남긴 상처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죠. 그래서 문을 완전히 닫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스즈메는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 또한 유년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며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이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마음 속까지 직접 들어갈 수는 없으니.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는 이상, 슬픔은 철저히 타인의 것일 뿐이죠. 그렇기에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잃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떠올려보는 것. 그러한 상상을 통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을 닫기 위해 고전하는 스즈메에게 소타는 여기 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라고 말하죠. 그녀가 이 장소에 있었을 수많은 감정들을 상상하자, 이윽고 열쇠 구멍이 생겨나 문을 잠글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마음속에 그려보는 일.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상상해 보는 것이 곧 공감의 시작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죠.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실의에 빠지고 안타까운 죽음에 비통해했죠. 나와 관련 없는 이들의 죽음임에도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남겨진 이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슬픔은 너무 쉽게 잊혀지곤 하죠.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냥 지나간 일이라 말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처럼 반복되는 재난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기억되길 바라며 재난 3부작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픔들이 너무 빨리 잊히지 않도록 말이죠.
도쿄의 대지진을 막기 위해 소타는 자신을 희생해 요석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스즈메는 저세상으로 넘어가 얼어붙은 소타를 끌어내리려 하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듯 그녀는 입맞춤으로 그를 깨우고 문밖으로 데려옵니다. 다이진들의 도움을 받아서 두 사람은 함께 대지진을 막아내고 결국 많은 사람들을 구해냅니다. 이어서 스즈메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죠.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고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받았던 과거의 스즈메에게 그녀는 의자를 돌려주며 다정히 위로를 건넵니다.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늘 우리 곁에서 일어납니다. 눈에 띄는 거대한 재앙뿐 아니라 때로는 아주 사소한 사건 역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하죠. 어쩌면 재난이란 꼭 지진이나 해일처럼 뉴스에 나올 만한 거대한 사고만을 말하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하니까요. 예상치 못한 이별과 실패. 그래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재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차라리 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힘들게 하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발목이 잡혀 도무지 도망칠 수도 없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얼른 잊고 살라며 다그칩니다. 마치 지겹다는 식으로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해요. 그런 잔혹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죠. 이미 곁에 없는 이들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까요?
누군가는 세상의 문을 닫고 그 안에 상처를 봉인한 채 살아가야 하는 희생을 감당해야 하죠. 그것은 너무나 외롭고 고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석은 마치 슬픔을 품고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가 되는 사람들의 은유처럼 다가왔습니다. 슬픈 기억을 꺼내면 무너질까 감정을 닫고 스스로를 얼려야만 했던 남겨진 이들. 그 무너져가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바로 스즈메가 그랬듯이, 그들이 숨겨둔 상처를 기억하고 그 곁에 남아주는 일이 아닐까요.
상실이라는 커다란 문 앞에 서있으면 어렴풋이 알 수 있었죠. 우리는 이 슬픔을 절대로 잊지 못할 거라는 걸요. 하지만 부디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마지막이 단지 비극의 희생자로만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분통의 눈물이나 머리를 어지럽히는 후회가 아니라, 웃으며 함께했던 시간들과 힘껏 안으면 따뜻했던 그 온기로 당신을 기억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나눴던 그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문을 열고 싶어요. 잘 다녀왔어라고 다시 한번 인사할 수 있기를. 그때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