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토 타츠키의 <체인소맨>
우리는 욕망을 동력 삼아 살아갑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감정은 우리를 목표로 나아가게 하죠. 실은 세상의 많은 부분이 욕망이라는 연료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전문가들은 그것이 유년기의 정서적 환경, 특히 부모와의 유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끝없이 애정을 갈망하게 되죠.
결국 욕망의 뿌리는 과거의 불충분함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결핍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내면의 갈증은 우리를 다시 욕망의 늪으로 끌어당기죠. 결핍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때로는 지배하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주인일까요, 아니면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일까요?
덴지는 바로 그런 결핍의 상징입니다. 그는 부모를 잃고 빚에 시달리며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에게는 욕망은 단순한 탐욕이 아닌 생존욕구 그 자체죠. 자신처럼 죽어가는 포치타를 만났을 때 그는 동질감을 느끼고 피를 나눠주며 계약을 맺습니다. 이후 그들은 함께 생활하며 식빵 한 조각조차도 소중히 나누며 살아가죠.
야쿠자의 개처럼 악마를 사냥하며 비참한 삶을 이어가지만 그 일상마저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좀비의 악마에게 이용당한 야쿠자들은 덴지와 포치타를 처참하게 죽여버리죠. 그 과정에서 포치타는 덴지의 꿈을 보여달라며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고. 덴지는 체인소맨으로 다시 태어나 인간도 악마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덴지 앞에 나타난 마키마는 지배의 악마입니다. 그녀는 덴지를 구해주고 가족을 만들어주지만 사실은 철저히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함이죠. 마키마의 능력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유의지 자체를 없애는 절대적인 지배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조종을 넘어서 체인소맨의 특별한 힘을 이용해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악마는 죽으면 지옥으로 가고, 그곳에서 죽으면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오는 윤회의 법칙을 따릅니다. 그러나 체인소의 악마는 먹어치운 존재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마키마는 이 능력을 이용해 모든 혼란과 불완전함을 지워내고 완벽한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녀는 모든 존재의 주인이 되고자 하죠.
작 중 덴지는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는 체인소맨 이라는 악마적 존재와 덴지라는 인간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죠.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로서 살아가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자문합니다.
모두가 체인소맨의 심장을 원하지만 정작 덴지라는 한 인간을 바라보는 이는 없습니다. 누구도 덴지를 사랑하지 않는 세계에서 마키마는 덴지를 처음으로 꽉 안아주었죠. 그 순간 덴지는 마키마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덴지에게 마키마의 포옹은 첫사랑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왜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까요. 우리는 좋아하는 이의 눈길 한 번에 마음이 흔들리고 ,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하죠. 어쩌면 사랑은 자발적인 노예 상태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의 마음은 상대에게 묶여 끌려다니며 기꺼이 복종하고 맙니다.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목줄을 단 채로 그 사람 주변만 맴돌며 점차 지쳐가죠. 마치 무엇이든 용서할 준비가 된 사람처럼 희생을 자처합니다.
이처럼 마음 깊은 곳에 새긴 각인은 마치 낙인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욕망은 우리를 어디까지 몰고 가려는 걸까요. 덴지는 드디어 원하는 가슴을 만지고 키스도 해보지만 야한 기분이 안 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이 대체불가능에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 설렘도 느낄 수 없죠.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 그 절실한 감정만이 덴지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덴지는 마키마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합니다. 덴지는 끝없이 마키마를 상상하며 모든 헌신을 다 바칩니다. 철저히 이용당하고 고통 속에서 버려졌음에도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죠. 모두가 마키마를 좋아했지만 실상은 사랑이 아닌 복종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배 능력의 결과였어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유일한 사람은 덴지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진심은 끝내 그녀에게 닿지 못합니다.
잔인하게도 마키마는 덴지에게 경멸에 가까운 말들을 내뱉습니다. 자신과 체인소맨의 관계를 방해하지 말고 불쾌하니 그냥 죽어버리라고 하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덴지가 아닌 포치타, 즉 체인소맨 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열렬히 동경한 대상이 코앞에 있는데도 못 알아보고 저주를 퍼붓죠.
마키마는 덴지의 냄새도 심지어 얼굴도 모릅니다. 애초에 덴지라는 존재 자체에 관심조차 없었죠.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덴지 너머의 체인소맨에게만 향해 있었고. 덴지는 그녀를 죽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처음부터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렇게 덴지의 사랑은 미완으로서 막을 내립니다.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걸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지만. 정작 그 사람의 실체가 아닌 내가 만들어낸 환상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사람이 진짜로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리의 마음은 열렬히 상대를 욕망합니다.
가장 좋아했던 사람을 직접 죽여야만 하는 비극. 그 속에서 덴지는 사랑이라는 길고 질긴 목줄을 끊어냅니다. 덴지, 마키마, 체인소맨. 이 뒤틀린 삼각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고 끝이 나죠.
닿지 못한 사랑은 그녀를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이 되어 혀 끝에서 맴돌죠. 그제야 덴지는 그녀의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육신의 온기를 쓸쓸히 되새기며 말합니다. "마키마 씨는 이런 맛이구나" 이토록 뒤늦은 고백은 사랑의 완성일까요. 아니면 잔혹한 환상의 종말일까요.
덴지는 마키마 씨의 전부를 삼키며 사랑했던 이를 탐구합니다. 먹음으로써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자.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마치 짝사랑의 은유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배 악마의 존재는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체인소맨이 아니라 덴지였기 때문일까요. 이제 그는 지배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이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서글퍼 보입니다. 아마도 사랑받지 못한 슬픔과 그리움이 뒤섞여 덴지를 따라다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덴지는 꿈을 찾아 진정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짝사랑에 빠진 친구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죠. 상대를 누구보다 아끼고 좋아했지만 그 사람은 친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정말 그 정도로 좋아하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친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칼로 날 찔러도 원망하지 않을 거야” 순간 당황했지만 그의 눈빛을 보자니. 그건 단순한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누가 봐도 진심이었어요.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을 찌른 상대를 오히려 안아주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었죠. 그건 섬뜩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웠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곤 합니다. 자신보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은 미련한 집착과 숭고한 순애 중에 어디에 가까울까요.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고 또 누군가는 사랑 하나로 삶을 버티기도 하죠. 마키마는 모든 악마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가 많을수록 악마의 힘이 강해진다고 해요. 만약에 사랑의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공포일까요 아니면 구원일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다가올 사랑이 두려우신가요. 기다리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