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기짐

쿠이 료코의 <던전밥>

by 김기범





문학을 보면 그 시대의 결핍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반영하기 때문이죠. 한때 유행했던 이세계나 먼치킨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만큼은 특별한 나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죠. 그런 의미에서 바라보면 모든 작품은 현실의 복제라고 할 수 있겠죠. 던전밥의 세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라이오스는 미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물을 먹기로 결정합니다. 낯선 식재료에 동료들은 기겁하며 극구 반대하지만 여동생 파린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죠. 마물식은 마치 금기를 어기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편견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입니다. 의외로 음식들은 맛도 있고 영양도 충분했고. 무엇보다도 요리를 통해 마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되죠. 그렇게 이들은 먹는 행위 그 이상을 배웁니다.

이 판타지 세계에서도 타인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종족만큼이나 수명도 사고방식까지 다 달라서 그들은 자주 충돌하죠. 하지만 미궁의 함정을 함께 극복하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셰이프시프터의 환상을 통해 상대를 유심히 관찰하고. 체인질링의 능력 때문에 직접 다른 종족의 몸으로 살아보며, 자신이 몰랐던 감각과 고통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낯선 것을 마주하면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혐오합니다. 그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오래된 본능이죠. 하지만 그러한 방어기제는 곧 상대를 오해하게 만들고 서로를 갈라 세웁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배고픔 앞에서 우리는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이게 되죠. 처음에는 낯설었던 맛이 반복될수록 익숙해지고 마침내 맛있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맛있다는 건 익숙하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찬가지로 이해하려는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다름을 소화하게 되고, 그렇게 일상 속으로 친숙히 스며듭니다.

던전밥의 세계에는 악마라는 하나의 축이 있습니다. 악마는 존재의 결핍을 감지하고 소원을 들어주죠. 하지만 그 대가로 끝없이욕망을 키워냅니다. 단순했던 욕망은 점점 복잡해지고 얽히면서 사람들은 처음에 무엇을 원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결핍의 굴레에 갇혀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죠. 악마는 그러한 욕망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그럴수록 미궁은 점차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는 감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갈 채우려 하죠. 그러나 그 구멍은 결코 메울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행복만으로 이루어진 삶은 없어요. 우리는 늘 충만과 결핍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할 뿐이죠. 그래서 미궁의 주인이 된다면 완전한 구원을 약속한다고 악마는 속삭이죠.

그래서 모두가 악마의 유혹 앞에 쉽사리 무너집니다. 미궁은 모습을 계속 바꾸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엘프들은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느끼고 무력으로 미궁을 제압하려 하죠. 하지만 라이오스는 다른 길을 택합니다. 바로 마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은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유일한 방식이에요. 그제서야 동료들은 비로소 공존을 배웁니다.

악마는 인간의 욕망을 전부 집어삼키며 거대해지고. 끝내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 세상을 위협합니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세계는 그렇게 악마의 식욕에 삼켜지고 마침내 미궁의 끝은 파멸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최후처럼 보이죠.

사실 미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의 거대한 은유입니다. 던전밥의 세계가 그러하듯 우리의 현실 또한 편견과 차별로 만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좇느라 타인을 상처 입히는 일에 점점 무감각해지죠. 실제 현실 역시 미궁에 갇혀 끝없이 헤매는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끝까지 거부한다면 그 끝은 분명 파멸이겠죠.

허기짐은 저주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어딘가로 나아가게끔 만들죠.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나은 무언가를 꿈꾸기도 합니다. 아마 욕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멈출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결핍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인셈이죠. 끊임없이 채우고 비워지는 이 공허한 과정이 마치 축복이라고 만화는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라이오스는 식사야말로 삶의 특권이라고 말하죠.

우리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배고픔과 포만감만큼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공통점이죠. 던전밥은 함께 식사하는 순간의 그 짧은 평화를 보여줍니다. 비록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없겠지만 먹고 배부른 시간만큼은 모두가 동등하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굶주리고 어떤 이는 만족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솔직히 출구없는 이 세계는 차라리 멸망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역꾸역 먹으며, 싫어도 다른 이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러니 그저 식사 속에서 만큼은 충만함 속에 머물기를. 아직 나를 원망하는 이와 날 지독히도 괴롭혔던 당신까지도 밥 한 끼 거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행복은 짧고 인생은 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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