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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둘째는 없다

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것이 약일까,

by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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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0.72명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감소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걱정하며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 내 머리에 쏙 들어온 원인 중 한 가지가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출산을 망설이게 만든다."


나도 몰랐던 내가 둘째를 낳지 않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몰라도 되는 것까지 너무 많이 알게 되어서 그런 거였다.

아이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뭐든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 알아서 잘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는 '쿨' 한 여성이었다. 문제가 있더라도 닥쳤을 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낳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공부하고 계산해서 대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부터 공부와 고민과 결정의 시간이 시작된다.

수 없이 많은 산부인과 중 내가 갈 곳을 정해야 하고 이곳 저곳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담당 의사 선생님도 결정 해야 한다. 임산부에게 허락 된 영양제 중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찾아 먹어야 하고, 수 없이 많은 튼 살 크림 중 가장 괜찮은 것을 사서 발라 줘야 한다. 개월 수, 주 수 마다 뱃속의 아이 성장 과정을 공부하며 진짜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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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준비물을 고를 때 검색의 정점을 찍는다. 각종 블로그와 SNS를 참고하고 쇼핑몰의 상세 페이지를 분석해서 아이에게 유해 하지 않은 바디 워시, 로션, 젖병, 분유, 손수건, 물티슈, 기저귀 등등 필수적인 것부터 유행하는 육아 아이템들을 비교해서 꼭 필요한 것들만 구매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말 수 만 가지의 육아 아이템이 있다. 엄마가 되기 전 단순히 디자인과 가격을 보고 물건을 구매하다가 고려해야 될 조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버려서 물건 하나 사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아이가 태어나 수유를 하고 주 수, 개월 별 성장 발달 상황을 체크하면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수 없이 찍고 그렇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슬슬 아프기 시작한다.

새 치아가 날 때, 후두염, 편도염, 인후염, 구내염, 중이염, 요로감염, 독감, 코로나, 장염, 두드러기 등, 아이가 저녁 쯤 살짝 열이 나면 내가 고려해야 하는 원인이 이 정도이다. 하루 이틀 전 부터 아이에게 보였던 증상들을 되짚으며 예측을 하고 소아과를 갈지 이비인후과를 갈지 조금 지켜봐야 할지 결정 해야 한다.

3-4세 경에 마트에 드러눕는 우리딸을 보며 ADHD의 특성을 찾아보고 TV에 나오는 문제가 있는 아이의 행동을 교정해주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그 아이들과 내 아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3세 까지 말을 잘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발달 지연, 조음 발달 지연, 자폐 스펙트럼, 발달장애, 언어장애를 수도 없이 검색하고 공부했었고 언어 치료 센터에서 검사를 하고 아이 언어 발달 지연 판정을 받은 후 조음 발달을 교정하는 동영상을 수도 없이 찾아보았다.

내가 언어 발달 센터에 아이를 보내지 않은 이유는 물론 대기자 수가 많은 것도 있었지만 옆방에서 행해지는 다른 아이의 치료 과정 보고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겠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딸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아이가 10분 동안 "사과"만 수십 번 발음 하는 것을 보고 우리 딸은 저 사과라는 발음을 따라하지도 않을 것이며 센터에 가는 날 마다 드러누워 나를 힘들게 할 것이 너무나 뻔해서 전문가 선생님들이 올려놓은 동영상을 아이와 함께 보고 연습해서 발음을 교정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교정이 되어 지금은 발음 상 어떤 문제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자주 아픈 아이를 보며 각종 유산균, 아연, 종류 별 비타민, 철분과 칼슘 등 영양제들을 찾아야 한다. 성분의 비율을 보고 하루 권장량에 맞는지 확인해서 구입 한다.

식판을 사용 하여 탄단지의 균형을 맞춘 밥을 차려주려고 노력하는데 세상엔 참 재주 많은 엄마들이 많다. 어쩜 그렇게 맛있고 귀엽고 예쁘게, 예술적이기 까지 하게 아이들의 밥을 차려주는지, 그런 다양한 메뉴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일주일에 한두 번 다른 아이들의 밥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요리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제 학습을 시켜야 하는 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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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내가 시키는 거라면 단어 한마디도 따라 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향의 아이였다. 그림도 내가 세모를 그리면 동그라미를 그리고 뭐 좀 가르쳐보려고 앉히면 본인이 나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그런 아이. 그래서 학교 가기 전에 곱셈에 분수까지 떼고 간다는 아이들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습적인 면에서는 그리 정보를 수집 하지 않았다. 유명한 교구 수업, 영어 수업, 미술, 사고력 등등 찾아보면 시키고 싶은 것만 수 백 가지 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공부를 안 시킬 수는 없으니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 아이 성향에 맞는 책을 사고 읽어주고, 천천히 다지듯 남들 다 하는 방문 학습지를 하며 초등학교를 준비했다.


이렇게 개인 차가 커지는 시기가 오면 SNS를 멀리하고 블로그를 보면 안된다. 자칫 아이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학기 정도는 선행을 시켜야 한다는 주변 엄마들의 말을 과감히 뒤로 하고 나와 아이는 학교 진도와 거의 비슷하게 진도를 나가며 집에서는 복습을 했다. 문제집은 또 어찌나 많은지 연산, 기본, 다지기, 최상위 등등 서점에 가서 수학 문제집만 30분 동안 찾아본 것 같다.


학교 생활은 학습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우관계, 수업태도, 체력 등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또 많이 있다. 학교에서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다. 교묘하게 말로 상처를 주고 은근슬쩍 따돌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아이의 모든 시간을 소유하려고 하는 그런 아이였는데, 심각하다고 인지 하지 못한 채 몇 주를 보냈더니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이라 앉혀 놓고 들어보니 하는 말이 아주 못된 아이였다. 아이가 하는 말을 받아 적고 언어 폭력으로 학폭위를 열 수 있는지, 그런 아이를 제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고 같은 사례를 검색한 뒤 선생님과 통화 하고 아이와 붙지 못하게 격리 시킨 적이 있었다.

아이의 다친 마음을 공감해주고 또 그런일이 있는지 아이에게 자극되지 않게 그렇지먼 세심하게 살펴야했다.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이 아이가 3학년이 되었다.


눈이 너무 나빠져서 안과를 다녀오고 안경을 맞췄다. 그저께는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해서 소아과에 다녀왔고, 앞니 뒤쪽 잇몸이 아프다고 해서 오늘은 치과에 가야 하고, 성장 호르몬 추적 관찰 중이라 며칠 뒤엔 그 병원도 가야 한다.

나만 유난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건가 싶어 친구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더니 그 친구는 1학년이 되는 둘째의 교육 과정 설명회에 간다고 했다.


아이도 너무 빨리 자라고, 세상도 너무 빨리 바뀐다. 엄마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그만큼 아이에게도 부담이 된다.

그냥 무던히 자라나는 아이만 바라보면 너무 예쁘고, 지금도 한창 예쁠 때 인데, 계속 앞 일을 걱정하고 대비하다보니 벌써 아이가 다 커버린 것 처럼 느끼게 되고 또 바라는 게 많아진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앞서니 지금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지금 당장이 행복해도 미래에 행복 할 수 있을 텐데 아이와 나의 오늘을 희생한다고 해서 미래에 행복을 어떻게 장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두 내려놓고 오늘의 행복한 생각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이 정도의 관심과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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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 한 명 키우는 게 너무 어렵고 버거워서 둘째는 생각도 못한다.

이걸 어떻게 또 해.

첫째와 두 살 차이 나는 둘째 교육 과정이 바뀌어서 그것도 공부해야 된다는 친구의 말이 나와 남편의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게 한다. 그래 우리는 아이 한 명만 열심히 키우자. 둘을 키울 수 있는 그릇이 못 되는 것 같다. 그래 그래 그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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