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이 '벚꽃엔딩'이라면, 이제 겨울의 전령은 '눈'이 될 것
자이언티의 음악은 머리 속에 어떤 장면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게 해줘서 좋다.
그림의 핵심재료는 무엇보다 자이언티의 음색이지만,
배경에 깔린 세션의 터치들은 감상자에게 훨씬 풍부한 느낌을 전해 준다.
언뜻보면 현대 추상화를 보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섬세한 질감과 묘사가 살아 있는 그림이랄까.
음악의 본질은 듣는 즐거움이지만 그의 음악은 보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양화대교'를 처음 들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을 듣는 동안은 ‘양화대교’가 아니라 마치 ‘영화대교’였다. 노래가 시작되자 머리 속엔 하나의 큰 스크린이 펼쳐지고, 나는 한강의 상공 위에 떠오른다. 양화대교를 위를 달리는 택시가 점으로 보였다가, 카메라 앵글이 빠르게 택시 안의 아버지의 찌푸린 미간으로 줌인 된다. 아버지의 표정은 어디선가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자이언티의 얼굴을 그리는 듯 했다.
그의 노래는 그렇게 영상으로 재현될 만큼 입체적인 감각을 끌어내는 마력이 있었다.
소리가 중심일 수 밖에 없는 ‘음악’이라는 장르가 총제적 감각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는 것이다.
이번 자이언티의 싱글 ‘눈’을 들으면서 나는 그의 음악적 가치가 최대치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양화대교’가 다큐였다면, ‘눈’은 멜로라고나 할까. 양화대교도 좋았지만 시적 감수성이 담긴 ‘눈’은 더 좋았다.
‘양화대교'가 그냥 자이언티 자체의 이야기였다면,
‘눈'은 자이언티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현실을 말하는 것보다 앞으로 했으면 하는 일, 해야할 일을 할 때 더 빛난다.
그래서일까 훨씬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고, 보석같은 눈 결정들이
가사 사이 사이에, 목소리 사이 사이에 내리고 있었다.
이번 싱글 ‘눈’을 들으며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 온 세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평소의 자이언티 답지 않는 강한 비음의 음색이다. 한 겨울 지독한 코감기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북받치는 감정 때문에 한참을 울고 난 후 같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녹음할 당시의 컨디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자이언티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그러한 코맹맹이 톤이 감상자로 하여금 그 아련한 감정들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했다.
두번째는 이른 아침 소복히 쌓인 눈을 싸래비로
쓸어 내리는 듯한 간주의 드럼세션이다.
이걸 듣는데 정말 눈처럼 빛나는 아이디어그나 하고 무릎을 쳤다. 이 소리만큼 이 장면 만큼
겨울과 눈의 정서를 잘 표현할 만한 소리의 질감이 있을까? 우리와 멀리 떨어진 겨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앞 마당에 있는 겨울을 말이다.
세번째는 이문세로 연결되는 곡의 전개다.
2017년의 트랜디한 감각을 가진 자인언티의 음성에서 갑자기 90년대의 발라드 감성으로 넘어가는
감성의 낙폭은 자연스럽지만 롤로코스터를 타고 과거로 가는 것 같은 벅찬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문세의 탁월한 곡해석력과 클래식한 음색, 전달력이 높은
읊조리듯한 보컬의 특징이 많은 도움을 줬다.
처음 자이언티라는 가수를 봤을 때, 그저 껄렁하고 잘 노는 연예인 중의 한명 정도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눈에 띈 행위들이 마치 의도된 예술가로써의 액션으로 생각된다.
아직도 보여줄게 많고 꺼내 먹을게 많은 뮤지션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자이언티'는 과연 이름대로 예술의 ‘자이언트'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음악 거인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뮤직비디오 감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