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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짝사랑을 끝내며

읽기에서 쓰기로

by 우현수
‘짝사랑을 자주 하는 사람을 보면, 짝사랑의 상대를 정말 사랑한다기 보다는 짝사랑을 하는 자기의 모습을 사랑한다’


20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역시 한창 짝사랑에 빠져있었다. 10대 후반부터 짝사랑은 나의 특기였다. 그러다가 짝사랑의 심리를 해석해 놓은 어떤 책의 구절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책의 내용에 의하면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기연민 때문에 더욱 짠하고 절절해지는 것이었다. 그걸 왜 그제서야 알았을까?


그 때까지 나는 모든 신경들이 내 감정에만 집중해 있었지, 사랑의 대상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매번 나는 혼자 짐작하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끝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책에서 봤던 짝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내 사랑의 태도와 진실성을 돌아보게 했다.


그 뒤로는 짝사랑에 매달리는 횟수는 점점 줄어 들었다. 짝사랑은 결국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사랑에 대한 나의 관점이 달라지니 그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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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짝사랑의 시작

시간이 많이 흘러 최근 십여년동안 나의 짝사랑 시리즈를 독차지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책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분명해지고 절실해졌다. 사회 초년생으로써 직장 업무에 필요한 정보나 경제, 재테크에 대한 상식을 넓히고 싶었다. 당장 모르고 공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가 너무 커져서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어떻게든 배워야 살 것 같았다. 배움에는 책만큼 좋은 게 없었다. 시간과 장소를 구분할 필요도 없었고, 투자 대비 저렴하고 빠르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선생이었다.


그런 열정으로 7년 동안 독서모임까지 하면서, 내가 그때까지 읽었던 책의 몇 배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내 책장을 채우고 있는 팔할은 거의 그 때 사모은 것들이다. 삼십대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앞으로도 계속 남을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순수하게 배우기 위해 모였던 그 때의 친구들과는 아직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인 친구들이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모였으니 뭘해도 뜻이 잘 맞았다.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때 꿈꾸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는 것을 보면 그 때 읽었던 책들보다 더 살아있는 공부가 되고 있다.


나는 왜 읽는가?

요즘은 그 때만큼의 열정도 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없어서 그 때의 십분의 일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사던 습관은 남아서 눈에 띄는 책은 일단 사 놓고 본다. 다 읽지 못하고 관상용으로 남은 책들은 점점 쌓여만 간다. 종종 아까워서라도 몇 번 들쳐보지만, 생각만큼 진도는 잘 안나간다. 두꺼운 한권을 읽어낼 집중력과 의지도 많이 사라졌다.


이러다 보니 그렇게 사랑하는 책에 대해서도 짝사랑 때처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책을 왜 읽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됐다. 마치 짝사랑을 한창 즐기던 그때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책 자체를 사랑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일까?’


사회 초년생 때야 생존을 위해 '알기 위해’ 읽었다면 지금은 그저 ‘알기 위해’서만 읽기에는 이유가 부족하다. 뭐든 알면 당연히 좋고, 뭐든 배워서 나쁠리는 없지만 평생을 남들의 생각들로만 내 머리를 속을 채우는게 불만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나는 왜 더 읽어야 할까? 뭔가 더 확실한 필요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지금 읽기는 사회 초년생 때의 기대와는 조금 다르다. 모르는 걸 '알기 위해' 읽기 보다는 이 걸 말하고 있는 지은이처럼 쓰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더 잘 쓰기 위해서,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 더 좋은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 생각을 조리있고 설득력있게 술술 잘 읽히게 쓰고 싶은 욕심.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읽기는 쓰기를 통해 완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듣기 또한 말하기로 완성되어야 한다.

'읽기는 쓰기를 통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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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배움은 쓰고 생각하는 것에서

어떤 생각을 읽고 배우는데만 그친다면 그게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까? 결국 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써야하고, 반드시 말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읽기 보다는 쓰고 싶어졌다. 읽더라도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도끼 눈으로 읽고 싶어졌다.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내 식대로 해석해서 받아 들이고 싶어졌다.


또 이렇게 책 읽기에 대한 내 짝사랑 또한 유효기간이 온 것 같다.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한 당연한 과정인 듯하다.

더 이상 일방적인 사랑은 안 하기로 다짐한다. 읽기와 쓰기의 대한 사랑은 적절하게 배분해 밀당의 선수가 되고 싶다.


그것이 진짜 배움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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