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이태리 젤라또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갔는데 매장 곳곳이 다양한 서체들로 도배가 돼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문장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적용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디자이너의 고민이 엿보여서입니다. 공감도 됐구요.
적용된 서체를 보면서 그 이유를 하나 하나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 눈에 띈 서체는 매장 입구 메인의 손글씨였습니다. ‘수제’라는 제품의 특징을 강조하기 좋은 서체입니다. 캘리그라피라는 문자 표현은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의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메세지를 표현하기에 참 적절해 보입니다. 파란색 페인트로 손수 칠한듯한 벽면은 이탈리아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의 물빛을 닮았네요. 그 위에 흰색으로 써서 더 시원한 기분이 납니다.
두번째는 말랑말랑하고 통통한 고딕계열의 서체입니다. 글자획들이 뭉툭한 게 아이스크림의 형태적인 특성을 닮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아 부드럽고 달콤한 인상을 줍니다. 아래에 깔린 형형색색 동그란 ㅐ턴과도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 세번째 서체는 탈네모틀*의 명조 계열입니다. 일반적으로 명조계열의 서체는 고딕과는 다르게 전통이고 진중한 느낌을 줍니다. 때문에 이태리 ‘정통’ 방식으로 제조한 제품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효과적입니다. 다만 일반적인 보통의 명조계열이 아닌 네모틀을 살짝 벗어난 서체를 썼습니다. 같은 명조계열이라도 네모틀을 벗어난 글자는 좀 더 젊고 밝은 느낌을 줍니다.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해 보이진 않으려는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디자이너가 세가지 서체를 선택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런데 이걸 다 한번 모아 봤습니다. 아래와 같은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같은 메세지인데 말하는
강조점과 분위기가 굉장히 다릅니다.
같은 사람인데, 매번 같은 메세지를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다고 해야할까요?
이처럼
브랜딩에 있어 서체의 운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브랜드 메세지가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의미라고 한다면, 서체는 브랜드의 목소리이자 음색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중저음으로 하는지 하이톤으로 하는지 허스키톤으로 하는지에 따라 브랜드가 전하는 메세지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음성변조한 것처럼 음색이 변한다면
듣는 사람은 정말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위 젤라또 매장의 음색은 세가지가 넘어 혼란스럽게 느껴진 이유입니다.
이렇게 브랜딩 요소에 있어 서체선택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온 신경을 집중해서 고르고 또 고르는 거겠죠. 위 젤라또 브랜드 매장을 디자인했던 디자이너 또한 앞서 말한 브랜드 서체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가지 서체를 보면 그걸 썼던 의도와 고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그 서체들을 보고 속으로 웃음이 났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이런 고민과 생각들을 짊어집니다. 물론 그 짐이 무겁거나 괴롭지만은 않습니다. 그 걸 해결해내는 게 우리 디자이너들의 숙명이자 의무기 때문입니다. 그걸 또 푸는 순간의 희열은 말할 것도 없구요.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모든 분들 께서 디자이너들의 이런 노력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알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BRIKER 우현수. 글
탈네모틀* 서체란?
‘네모틀 한글꼴’의 상대적 개념의 용어로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던 한글꼴의 기본틀인 바른네모틀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한글꼴의 구조이다. 이러한 시도는 질서있고 규격화된 네모틀의 일반적인 글자 형태에서 벗어나, 초성 글자, 중성 글자, 종성(받침) 글자의 조합 구조 원리에 의해 글자의 기계화와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효율화를 가져왔다.